2016년 12월 4일 일요일

늙은 우파 윤복희

작성자 : 비바람    작성일 : 16-12-01 조회수 : 132 추천수 : 4 번호 :56,279
여론 1번지 늙은 우파 윤복희 부추연

가수 윤복희가 SNS에 글을 올렸다가 촛불세력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윤복희가 SNS에 게시한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 주소서"



여기 글에 촛불세력을 비하하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글의 내용에 제 발 저린 촛불세력들이 윤복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만약에 윤복희가 촛불 세력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면 윤복희는 제대로 정곡을 찌른 셈이다. 만약에 촛불세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도 윤복희는 제대로 진실을 말한 셈이다. 누구라고 명시도 하지 않은 글에 무턱대고 죽창을 휘두르고 나서는 인간들이라면 그게 빨갱이지 아니면 뭔가.



예전에 윤복희를 생각하며 쓴 글이 있기에 재록해 본다.


늙은 우파는 죽지 않는다 - 2011. 05. 27.



여기 낯이 익은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생 노래만을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
어려서 지독히도 불행했던 사람,
대여섯 살 때 어린 오빠와 함께 행려병자 시체실에 던져졌다가
깨어났던 꼬맹이 여자가
이제 늙은 할머니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노래,
한때는 가장 아름다웠던 여자가 탄력 없는 피부와 주름살을 보이며
다시 그 옛날의 약속을 상기 시키고 있다.
우리가 험한 길 걸을 때 우리의 등불이 되겠다던 그 여자 윤복희,
그 약속은 영원하다는 듯 늙은 여가수가 열창하고 있다.
 


윤복희가 두 번의 이혼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을 때
오빠 윤항기는 동생의 영원한 친구가 되기 위하여 이 노래를 만들었고,
윤복희는 이 노래로 국민의 기쁨이 되고자 했고
친구가 되고자 이 노래를 불렀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의 탱탱한 피부가 탱자껍질이 될 때까지
그녀가 우리를 위안한다면
우리가 그녀에게 위로를 보내야 할 때는 언제이런가.
 


아름다운 노래를 늙은 여가수가 부르고 있다.
젊은 날의 번민도 뜨거운 열정도 가라앉아,
삶의 온갖 고뇌를 짊어지고 산전수전의 훈장을 얼굴에 그리고,
사랑도 이별도 삶이고 번민도 고뇌도 삶이려니
인생은 고해였는가.
삶을 달관한 육십 다섯의 그녀가
마지막 꿈인 것처럼 가슴의 뜨거운 것을 뿜어내고 있다. 어허 그리하여
아름답구나, 늙은 그녀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님처럼 어머니처럼
그녀는 아름답구나.
젊음과 함께 사라져버린 아름다움을,
이제는 가고 없는 아름다움을 그녀는 안에서 꺼내는구나.
안에서만 자라다가 농이 익어서만 밖으로 분출시키는
화산 같은 아름다움을 그녀는 뿜는구나.
노래 가락 한줄기로도 가슴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무서운 칼날을 그녀는 가졌구나.
 


육십 다섯의 그녀 앞에서 오호 부끄럽구나. 
이제야 오십이 다가오는 나는,
나는 누구를 위해 등불이 되려고 했던가.
그녀의 주름살 앞에서 오호,
가슴이 아프구나 그녀의 주름살은 아버지를 닮았네.
한 번도 아버지를 위로 못해 드리고
나는 아버지를 보냈다네.
오호 부끄럽구나.
이제 오십도 못된 내가 육십 다섯의 그녀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해야 하다니.
 



아부지, 주름살은 늙는다는 것은 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할까요,
저 여자의 주름살과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들은 왜 아버지를 닮았을까요,
 IMF때 장남의 사업 실패로 아부지는 집과 밭을 뺏기고
쫓기듯 고향을 떠나셨지요,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는 늙으신 아부지의 마지막 꿈은
고향 뒷산에 묻힐 때서야 비로소 고향집 앞을 지나갈 수 있었지요,
 


아부지, 한 생애가 부질없던가요,
오일장에서 사 오신 쟁기 보삽을 깨뜨리고 탄식하던 아부지,
평생을 거치른 들판 흙속에서 사셨던 아버지,
해 뜨면 밭에 가고 해 지면 들어오고,
굵은 주름살과 흙투성이 손,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리하여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농투성이 아버지가,
아버지의 생애가 그리하여 아름답습니다,
 


가슴에 불을 담은 듯 전쟁이라도 하려는 듯
아버지는 밭에 나가는 걸 멈추지 않았고,
꼬맹이였던 나도 아버지를 따라 그 자갈밭에
땡볕이 쏟아지고 싸락눈이 내리는 걸 보았지요,
아부지, 그건 농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혁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박정희의 구호에 따라
아버지가 행하던 전쟁이었습니다,
아부지와 나와 박정희는 그때 거기에서 혁명동지였습니다,
 
 


박정희도 가고 없고 아버지도 가고 없고 녹슨 시계처럼 혁명은 멈추었지만,
혁명세대는 늙어가고 혁명은 미완이지만,
그러나 오늘 가슴에 뜨거움을 품은 늙은 여가수는 늙지 않았다.
그렇다. 가슴에 불을 담고 사는 사람은 영원할 수 있다.
박정희는 죽지 않았고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내가 있고 가슴에 뜨거운 것들을 품은 대한민국 우파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노인은 암으로 3개월 시한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노인은 3개월 후에도 죽지 않았다.
며칠 후에 막내아들이 결혼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3개월이 흘렀지만 노인은 죽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장손이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삶의 숙제가 남았다는 것은
죽음마저도 물리치는 힘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늙었다,
이제는 안방에서 손주의 재롱이나 볼 나이들이지만 보수우파는 주저앉지 않는다.
아직도 이들에게는 숙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저승에 가서라도 꼭 이루어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그 혁명의 끝,
임진강 너머 압록강까지 두만강까지...
 


뜨거운 지열이 끓어오르는 아스팔트에서,
독수리 타법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밭고랑처럼 깊고 파도이랑처럼 굵은 주름살이 아름답구나.
젊어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오로지 인생의 훈장을 계급장처럼 치렁치렁 이마에 붙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처럼 다다르는 곳,
그곳이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영토이려니.
 


여기는 대한민국,
아직도 혁명은 미완이어서, 아직도 혁명은 계속되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 사는 곳,
늙어서야 비로소 빛을 내며 아름다워지는 보수우파가 사는 땅이려니.
깃발로 나부끼는 보수우파의 자긍심이 자랑스럽구나,
가슴에 꿈이 있어 죽어서도 꼭 올라가야할 고지가 있어서
대한민국의 늙은 우파는 절대 죽지 않는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위로하여 우리를 살아가게 하던 것.
그러나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위로 할 것이로니,
아부지, 당신이 있어 내가 있었으려니,
대한민국, 그대가 있어 우리가 있었으려니,
우리가 없으면 우리 아들들이 있을 것이요,
우리 아들이 없다면 우리 아들의 아들들이 있을 것이려니,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비바람

拙著 '대한민국의 far and away'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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