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기획된 좌파의 작품: 프레임 만들기의 성공
프레임이라는 말이 있다. 구도, 틀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번 탄핵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결과를 이끌고 있는 주도 세력이 프레임을 기가 막히게 잘 짜고 진행시키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다.
이번 프레임의 백미는 오랫동안의 치밀한 사전 준비이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 국가에서 계엄령 하도 아닌데 모든 언론들이 일사불란하게 탄핵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보도와 논평을 하고 미확인 허위사실 보도조차도 서슴지 않은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소위 보수언론이라고 지칭되는 신문이나 방송이 허위나 자극적인 논평까지 보태어 사실상 사태를 부축이며 이끌어 온 것이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언론 어느 곳에나 아무런 내부 분란이나 갈등도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모든 언론사 내부적으로도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언론역사상 前無後無한 자발적 공공 언론 일치단결의 사례이다.
프레임에 따라 움직이는 탄핵시국
프레임이라는 말이 있다. 구도, 틀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번 탄핵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결과를 이끌고 있는 주도 세력이 프레임을 기가 막히게 잘 짜고 진행시키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다. 굳이 진영으로 표현하자면 프레임을 만들고 진행시키는 능력에서 좌파가 우파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으로 형성된 집단이므로 일단은 신앙과 같은 체계가 존재하고 따라서 그 强度는 달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동조자를 쉽게 모을 수 있다.
우파는 사실은 좌파가 있음으로써 지칭되는 대립 개념으로 공통된 이데올로기나 좌파와 같은 강한 이념이 따로 없다. 우파는 자유, 민주, 시장경제라는 막연할 수도 있는 가치를 존중하는 집단을 지칭하므로 국가적 위기사태가 아닌 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힘이 없거나 아주 약할 수밖에 없다.
초기 촛불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좌파이기 때문에 거리로 나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도면밀하게 만들어 놓은 좌파들의 낮은 단계의 프레임에 공감하여 호스트 바의 고영태와 반말을 하고 지낸다는 최순실이 박대통령의 자문역이라는 미확인 언론보도에 상한 자존심 때문에 광장으로 모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에 더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인기 연예인의 거리 공연과 방송 생중계까지 있으니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의 의도와는 달리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러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군중의 힘과 열기에 자기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짜 목표를 단계적으로 끼워 넣고 군중의 반응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위 주도세력이 노리는 첫 목표는 군중의 증오심과 분노의 폭발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작업은 출처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전달과정에 의도적인 조작이 있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한 테블릿 피씨의 언론 폭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동안에 이름도 들어보지 않았던 어떤 여자가 國政에 임의로 간여하였고 그 사생활이나 자녀교육이 국민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구도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게 만드는 순서를 밟았다. 사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필자도 못마땅하게 느껴 화를 크게 낸 적도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최순실의 비리나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또 그의 딸인 철딱서니 없는 젊은 정유라의 언동에 의해 자극받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아마도 지금과는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번 사태 프레임의 우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 발짝만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가 至高至善한 성품과 생활 모습을 가지고 여태껏 살아 온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인 면이라도 특별히 내놓을 만한 모범적인 집단이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정농단이라는 정말 듣기 불쾌한 용어의 일이 유감스럽게도 이번 정권에서만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권력자의 아들이나 형제가 한 것은 국정농단은 아니고 친인척이 아닌 제 3자가 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 국정농단이라는 분위기를 전 언론을 통해 조성한 것이 이번 프레임의 다른 우수성이다.
그 이름조차도 세련되게 들리지 않는 한 여성이 저지른 이번 행위가 국민과 헌법에 의해 위임받은 최고의 권력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천하의 대죄(大罪)라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 오게 하는 야비한 추진방식이 참으로 치밀하고 놀라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자기 진영들이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문제 삼을 것이 없고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은 끝까지 까밝혀서 그로 촉발된 대중의 분노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구도가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불미스럽기도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일로 대통령이 임기 중 탄핵받아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회심의 전략이다. 역대 정권마다 예외 없이 재벌이 엄청난 돈을 내게 하여 권력자가 직접 가지든지 아니면 소위 공익재단 같은 것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각종 리스트를 만들고 이용하는 일은 역대 정권에서도 있어 왔던 일이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글을 쓰더라도 참고문헌이나 자료는 목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블랙리스트라는 어두운 이미지의 이름으로 만드는 과정이 이번 프레임의 세 번째 우수성이다. 실제 지시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일로 현직 장관을 구속하는 용맹을 특검이 부리도록 만드는 분위기는 이 프레임을 짜고 진행하는 측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우리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강하게 암시한다. 이런 국면이 도래하면 완장을 차고 설치는 행동부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세력은 전부 악이고 나머지는 단순한 피해자였다는 구도 아래서.
이 프레임의 네 번째 기막힌 우수성은 수능 시험을 앞둔 학생들과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비친 정유라의 명문대 체육특기자 입학과 학점 관리의 비리 폭로이다. 체육특기자 특례입학이라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악용의 시도는 앞으로도 끊임없을 것이다. 체육특기자의 학점처리는 어쩌면 알려진 비밀과 같은 사항이었는데 한 특정인에게 거저 학점을 주었다고 교수를 구속했는데도 학계는 아무 말이 없다. 마치 그 한 사람만이 있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특검이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내세운 구호가 경제보다 정의를 앞세운다는 이유였다. 멋있는 논리이고 지금의 국민감정에 딱 맞는 말이었다. 우리의 산업구조 특히 재벌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경제구조를 당연히 개혁하고 바꾸어 나가야 하지만 어떤 계기에 감정에 편승해서 처리할 일은 결코 아니다. 개혁에는 고통도 수반되기 때문이다. 정직한 지도자는 개혁을 위해 적절한 청사진을 제시하여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바꾸어 나가자는 말을 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번 프레임의 백미는 오랫동안의 치밀한 사전 준비이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 국가에서 계엄령 하도 아닌데 모든 언론들이 일사불란하게 탄핵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보도와 논평을 하고 미확인 허위사실 보도조차도 서슴지 않은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소위 보수언론이라고 지칭되는 신문이나 방송이 허위나 자극적인 논평까지 보태어 사실상 사태를 부축이며 이끌어 온 것이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언론 어느 곳에나 아무런 내부 분란이나 갈등도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모든 언론사 내부적으로도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언론역사상 前無後無한 자발적 공공 언론 일치단결의 사례이다.
언론의 사명은 일단 있는 일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있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것은 언론인에게는 큰 용기일 것이다. 이번에 모든 언론이 촛불집회는 끊임없이 부풀려 보도하면서 뒤따라 터진 태극기 집회는 축소는 커녕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념지향적인 교원노조가 그 동안 공들여 물들여 놓은 효과가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자라면서 본인이 영향을 받는지도 모르게 교육받고 의식화된 결과가 온 나라를 바꿀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이라는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런 거대한 구상을 일찍부터 계획하고 실행한 주체와 그 배후에 경탄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언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주요 요소에 이런 성과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념은 총, 칼보다 강하다. 그 내용은 아니지만 추진 방법은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잘 하고 싶어도 주변이나 외부 여건이 방해하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은 개인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임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해 오고 있다.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형편에 대해 우리 조상들에게 아무리 탓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근육질의 4대 강국들이나 핵무기와 미사일을 신주단지처럼 안고 있는 북한이 대한민국은 특별히 생각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큰 誤算이다.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이다. 섣불리 건드려서 오히려 자기에게 손해라고 계산되면 그대로 놓아두거나 오히려 공동이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고 가치나 힘이 없거나 대항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잡아먹는다는 정글법칙의 원리를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은 과거의 외교, 국방 원리만은 아니다.
100여 년 전의 한일합방이나 또 유사 이래 끊임없이 우리가 주변국에게 당해 왔던 일들이 이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어떤 집단이나 세력은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최악의 경우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하는 조직이요 공동체인 것이다. 이번의 사태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은 눈앞에 닥친 정권이나 권력 획득은 至上의 목표물이고 이 나라의 장래는 그 다음 번 과제로 생각될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운 현실의 목도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인될 수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북한을 통해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비대칭 군사력인 북핵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위험한 현실이다. 내가 나서면 어쩌면 잘 풀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 기대로 국가를 운영해보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누구의 보살핌을 기대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순진하거나 무식한 처사이다. 군사, 외교는 낭만이나 시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의 탄핵사태를 풀거나 해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기분과 감정만으로 이 사태를 판단하고 지켜볼 수만 없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정의와 절차는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우리가 민주적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 제도와 그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고 특히 국회나 언론이 그 감시자나 수호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인권의 존중 등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가 옹호하는 가치가 훼손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기회에는 또 다른 형태로 그것이 훼손되고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가치가 때로는 무시되어도 좋다는 순간부터 우리는 민중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교묘한 프레임을 현실화시킨 집단에 어쩌다 휘둘리게 된 우리 모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족한 정치력과 나만 잘하면 된다는 소박한 가치관이 너무나 큰 변란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민주국가의 다양한 이익집단이 불합리한 목소리를 한꺼번에 낼 때까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권 관계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 뼈저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의 후손을 생각하며 더 나은 조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습을 가다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프레임이라는 말이 있다. 구도, 틀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번 탄핵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결과를 이끌고 있는 주도 세력이 프레임을 기가 막히게 잘 짜고 진행시키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다. 굳이 진영으로 표현하자면 프레임을 만들고 진행시키는 능력에서 좌파가 우파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으로 형성된 집단이므로 일단은 신앙과 같은 체계가 존재하고 따라서 그 强度는 달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동조자를 쉽게 모을 수 있다.
우파는 사실은 좌파가 있음으로써 지칭되는 대립 개념으로 공통된 이데올로기나 좌파와 같은 강한 이념이 따로 없다. 우파는 자유, 민주, 시장경제라는 막연할 수도 있는 가치를 존중하는 집단을 지칭하므로 국가적 위기사태가 아닌 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힘이 없거나 아주 약할 수밖에 없다.
초기 촛불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좌파이기 때문에 거리로 나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도면밀하게 만들어 놓은 좌파들의 낮은 단계의 프레임에 공감하여 호스트 바의 고영태와 반말을 하고 지낸다는 최순실이 박대통령의 자문역이라는 미확인 언론보도에 상한 자존심 때문에 광장으로 모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에 더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인기 연예인의 거리 공연과 방송 생중계까지 있으니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의 의도와는 달리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러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군중의 힘과 열기에 자기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짜 목표를 단계적으로 끼워 넣고 군중의 반응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위 주도세력이 노리는 첫 목표는 군중의 증오심과 분노의 폭발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작업은 출처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전달과정에 의도적인 조작이 있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한 테블릿 피씨의 언론 폭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동안에 이름도 들어보지 않았던 어떤 여자가 國政에 임의로 간여하였고 그 사생활이나 자녀교육이 국민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구도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게 만드는 순서를 밟았다. 사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필자도 못마땅하게 느껴 화를 크게 낸 적도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최순실의 비리나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또 그의 딸인 철딱서니 없는 젊은 정유라의 언동에 의해 자극받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아마도 지금과는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번 사태 프레임의 우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 발짝만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가 至高至善한 성품과 생활 모습을 가지고 여태껏 살아 온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인 면이라도 특별히 내놓을 만한 모범적인 집단이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정농단이라는 정말 듣기 불쾌한 용어의 일이 유감스럽게도 이번 정권에서만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권력자의 아들이나 형제가 한 것은 국정농단은 아니고 친인척이 아닌 제 3자가 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 국정농단이라는 분위기를 전 언론을 통해 조성한 것이 이번 프레임의 다른 우수성이다.
그 이름조차도 세련되게 들리지 않는 한 여성이 저지른 이번 행위가 국민과 헌법에 의해 위임받은 최고의 권력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천하의 대죄(大罪)라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 오게 하는 야비한 추진방식이 참으로 치밀하고 놀라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자기 진영들이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문제 삼을 것이 없고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은 끝까지 까밝혀서 그로 촉발된 대중의 분노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구도가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불미스럽기도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일로 대통령이 임기 중 탄핵받아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회심의 전략이다. 역대 정권마다 예외 없이 재벌이 엄청난 돈을 내게 하여 권력자가 직접 가지든지 아니면 소위 공익재단 같은 것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각종 리스트를 만들고 이용하는 일은 역대 정권에서도 있어 왔던 일이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글을 쓰더라도 참고문헌이나 자료는 목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블랙리스트라는 어두운 이미지의 이름으로 만드는 과정이 이번 프레임의 세 번째 우수성이다. 실제 지시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일로 현직 장관을 구속하는 용맹을 특검이 부리도록 만드는 분위기는 이 프레임을 짜고 진행하는 측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우리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강하게 암시한다. 이런 국면이 도래하면 완장을 차고 설치는 행동부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세력은 전부 악이고 나머지는 단순한 피해자였다는 구도 아래서.
이 프레임의 네 번째 기막힌 우수성은 수능 시험을 앞둔 학생들과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비친 정유라의 명문대 체육특기자 입학과 학점 관리의 비리 폭로이다. 체육특기자 특례입학이라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악용의 시도는 앞으로도 끊임없을 것이다. 체육특기자의 학점처리는 어쩌면 알려진 비밀과 같은 사항이었는데 한 특정인에게 거저 학점을 주었다고 교수를 구속했는데도 학계는 아무 말이 없다. 마치 그 한 사람만이 있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특검이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내세운 구호가 경제보다 정의를 앞세운다는 이유였다. 멋있는 논리이고 지금의 국민감정에 딱 맞는 말이었다. 우리의 산업구조 특히 재벌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경제구조를 당연히 개혁하고 바꾸어 나가야 하지만 어떤 계기에 감정에 편승해서 처리할 일은 결코 아니다. 개혁에는 고통도 수반되기 때문이다. 정직한 지도자는 개혁을 위해 적절한 청사진을 제시하여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바꾸어 나가자는 말을 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번 프레임의 백미는 오랫동안의 치밀한 사전 준비이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 국가에서 계엄령 하도 아닌데 모든 언론들이 일사불란하게 탄핵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보도와 논평을 하고 미확인 허위사실 보도조차도 서슴지 않은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소위 보수언론이라고 지칭되는 신문이나 방송이 허위나 자극적인 논평까지 보태어 사실상 사태를 부축이며 이끌어 온 것이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언론 어느 곳에나 아무런 내부 분란이나 갈등도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모든 언론사 내부적으로도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언론역사상 前無後無한 자발적 공공 언론 일치단결의 사례이다.
언론의 사명은 일단 있는 일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있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것은 언론인에게는 큰 용기일 것이다. 이번에 모든 언론이 촛불집회는 끊임없이 부풀려 보도하면서 뒤따라 터진 태극기 집회는 축소는 커녕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념지향적인 교원노조가 그 동안 공들여 물들여 놓은 효과가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자라면서 본인이 영향을 받는지도 모르게 교육받고 의식화된 결과가 온 나라를 바꿀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이라는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런 거대한 구상을 일찍부터 계획하고 실행한 주체와 그 배후에 경탄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언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주요 요소에 이런 성과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념은 총, 칼보다 강하다. 그 내용은 아니지만 추진 방법은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잘 하고 싶어도 주변이나 외부 여건이 방해하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은 개인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임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해 오고 있다.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형편에 대해 우리 조상들에게 아무리 탓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근육질의 4대 강국들이나 핵무기와 미사일을 신주단지처럼 안고 있는 북한이 대한민국은 특별히 생각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큰 誤算이다.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이다. 섣불리 건드려서 오히려 자기에게 손해라고 계산되면 그대로 놓아두거나 오히려 공동이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고 가치나 힘이 없거나 대항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잡아먹는다는 정글법칙의 원리를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은 과거의 외교, 국방 원리만은 아니다.
100여 년 전의 한일합방이나 또 유사 이래 끊임없이 우리가 주변국에게 당해 왔던 일들이 이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어떤 집단이나 세력은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최악의 경우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하는 조직이요 공동체인 것이다. 이번의 사태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은 눈앞에 닥친 정권이나 권력 획득은 至上의 목표물이고 이 나라의 장래는 그 다음 번 과제로 생각될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운 현실의 목도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인될 수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북한을 통해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비대칭 군사력인 북핵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위험한 현실이다. 내가 나서면 어쩌면 잘 풀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 기대로 국가를 운영해보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누구의 보살핌을 기대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순진하거나 무식한 처사이다. 군사, 외교는 낭만이나 시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의 탄핵사태를 풀거나 해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기분과 감정만으로 이 사태를 판단하고 지켜볼 수만 없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정의와 절차는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우리가 민주적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 제도와 그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고 특히 국회나 언론이 그 감시자나 수호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인권의 존중 등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가 옹호하는 가치가 훼손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기회에는 또 다른 형태로 그것이 훼손되고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가치가 때로는 무시되어도 좋다는 순간부터 우리는 민중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교묘한 프레임을 현실화시킨 집단에 어쩌다 휘둘리게 된 우리 모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족한 정치력과 나만 잘하면 된다는 소박한 가치관이 너무나 큰 변란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민주국가의 다양한 이익집단이 불합리한 목소리를 한꺼번에 낼 때까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권 관계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 뼈저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의 후손을 생각하며 더 나은 조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습을 가다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 2017-02-05, 08:17 ] 조회수 : 2816 |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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