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일 토요일

박근혜는 기득권 집단의 쿠데타로 희생된 것

박근혜는 기득권 집단의 쿠데타로 희생된 것
한 인간에 대해 그 정도로 오랫동안 그 정도로 집요하고 비열하게 공격한 사례는 세계사를 통틀어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서민의 힘으로 일어섰다가 기득권자들의 배신으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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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되고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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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창출, 정권창출 하는데, 보수 우파적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 인물이 정권을 잡더라도 여당이 다수석이어야 한다. 아울러 여당 의원들이 이념적인 면, 가치관 측면에서 대통령과 일정부분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은 잡으나마나이다. 이 간단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87년 체제 이후 사실상의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김영삼, 김대중이 제왕적 대통령이었던 것은 자신들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공천권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지 대통령 자리의 권한이 강해서가 아니다. 이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먹히지 않더라.

우리는 5.16 혁명 전부터 의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그들의 알력다툼 때문에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박정희 집권으로 구세대가 물러가고 선수층이 얇아진 우리 정치계에서 젊은 김영삼, 김대중이 리더가 되었다. '양김'의 정치목적이 권력쟁취 그 자체라면, 게다가 그 과정마저 자신들의 삶의 존재 이유요 보람이라면, 박정희로 인한 정치적 최대수혜자는 ‘양김’이라 볼 수도 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자기 팬이 있었고 자기 라인이 있었다. 요즘 말하는 ‘빠’라는 지지 세력이 있었던 것. 자신의 정치적 가신, 정치적 아들이 있었다. 최형우, 김덕룡, 박지원, 한화갑 등등이 ‘양김’에게 있어 정치적 가신이다. 노무현에게도 자기 팬과 측근이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을 추종하는 세력의 우두머리 급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계파를 형성했다. 그 계파 아래 또 다른 계파가 탄생했다. 그들 끼리 나눠먹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정치는 수십 년 간 기득권층에 의해 돌아갔다. 여기에 정치부 기자나 언론사 사주가 가담했다.

과거 3당 합당 전의 민정계에 대해 전두환 계라느니 공화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느니 여러 말들이 많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종하던 세력이 형성한 계파는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치, 그러니까 우리 국회와 언론은 수십 년간 3김과 그 계파, 아류들이 독점했다. 그들 정권 하에서 검찰, 경찰의 색깔과 특성이 변했고 그들 정권 하에서 권력에 대한 언론의 시각과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경중취급 관습이 새롭게 자리 잡혔다. 그런 속에서 국회, 언론, 권력기관이 상호 영향을 끼치며 닮아갔다.

박근혜는 그럼 누구인가? 어떤 계파에 속하는 사람인가? 여러 분석을 할 수 있을 테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기득권 세력, 즉 기존의 국회, 정치인, 언론, 관료집단이 형성한 그들만의 리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박정희를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 살면서 온 몸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체득한 그런 시민들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이명박도 모두 퇴임 전에 다음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장치를 해놓고 나갔다. 그 대통령들이 국회와 여론 핑계를 대며 끌려가는 척 만든 여러 제도는 대부분 다음 대통령을 의식한 것이었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장치들이 많지만, 알려진 장치로는 이명박 정권 때 검찰총장 임명을 대통령이 임의로 할 수 없도록 해놓은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일일이 다 쓸 순 없는 것이고, 아무튼 채동욱과 김수남이 검찰총장이 된 것은 박근혜-김기춘의 속내는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군 인사 문제는 박 대통령이 아쉬움을 많이 가졌을 것이라 본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 기조가 박근혜-김기춘 콤비의 생각과는 다른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음이 언젠가 반드시 밝혀지리라 본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검찰이나 군 출신들이 자기 조직 내부에 대해 의심을 많이 하고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를 꽤 보았다. 오래 전 우연히 군 내 요직을 놓고 일종의 로비를 해가며 내부 다툼을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다. 군 내부에도 복잡한 암투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검찰이나 군에서 간부로 지내다 나온 이들은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과 관련한 일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 조직의 움직임을 가늠하기 마련인데, 대개는 어떤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면에 대해 선뜻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의 외교, 안보 기조, 군 인사 문제 등에 대해 주류언론이 군 출신들을 인터뷰하고 쓴 기사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았으리라 본다.

대통령이라 하여 모든 걸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걸 알면서도 우리는 곧잘 ‘대통령이 왜 그것도 못하나’하는 소릴 한다. 수백 년 간 남 탓하는 것과 비판하는 것이 체질화 되어서일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과 다른 평가를 너무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매우 무능하거나 나약하거나 소소한 이익이나 챙기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언론은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 사실이 아닌, 어느 한쪽 주장을 바탕으로 소설을 많이 썼다.

전두환-노태우는 다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오랜 친구사이이다. 정권을 이어받을 정도였다. 높은 신뢰관계를 가진 사이라 할 것인데, 그런 사이에서조차 야망을 가진 정치인들과 언론으로 인해 오해와 갈등이 생겼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치란 것, 언론의 보도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을 땐 대통령이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과거보다 훨씬 적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당권을 쥐고 있지 않았고 공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우호 국회의원이 많지 않았다. 이 점을 간과하거나 인정치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대로 시원하게 일처리 하지 못할 그런 절묘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애써 인정치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원칙주의자이고 정치적 기교를 부리지는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때로는 묘수풀이(?)도 한다.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이지 못할 뿐… 박 대통령이나 김기춘 실장의 인사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따금 좌경적인 면이 있는 사람을 기용하는 것을 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걸 “아싸! 흠하나 찾아냈다”는 식으로 공격한 이들이 많았다. 왜 우파정권이 좌경적 인사를 쓰냐는 것이다. 김기춘 실장이 해온 일 등으로 미루어보면 보수우파 시각에서의 그의 인사 실수는 결코 이념적으로 어리석어서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전후사정을 살펴 헤아려주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하고 비판만 하였던 것이었으리라.

기득권 세력은 소시민에 의해 대통령이 된 박근혜의 힘을 빼려고 했다. 소시민과 멀어지게 하려 애썼다. 각계각층 각 매체가 처해진 입장에서 최대한 ‘박근혜 깎아내리기’에 돌입했다. 무려 4년 동안 계속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의 가신과 팬들은 인정하면서 박근혜를 따르거나 그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은 '내시' 취급했다. '박빠'로 깎아내렸다. 지독한 여성비하와 과도한 정치적 견제였다.

예컨대 주부층을 주시청자로 하는 종편 예능프로그램, 잡지는 대통령의 머리스타일을 흠잡았다. 육영수 흉내 내기라느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치성 머리 꾸미기라느니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60~70대 남성들을 겨냥해서는 “박 대통령이 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지시했다. 전두환 아들 구속은 박 대통령 공이다”고 하였다. 젊은이들을 겨냥해서는 “박근혜는 전두환에게 받은 돈으로 강남에 비싼 집을 샀다”고 하였다. 반일감정을 가진 계층을 향해선 “박 대통령이 위안부 협상을 졸속으로 했다”고 하였다. 그런 식으로 거의 4년간 집요하게 때렸고 지지자와의 사이를 이간질 했다.

최서원 씨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처녀성을 거론하는 저질적이고 비열한 보도를 통해 그런 부분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60~70대 평범한 남성들을 공략했다. 얼굴에 주사를 많이 맞는 허영 많은 사람이란 뉘앙스로 5~60대 주부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깨려 했다. 학생들에게는 세월호 구조실패의 원흉 이미지를 집요하게 심었다. 그 외에도 어떤 보도를 하였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해 그 정도로 오랫동안 그 정도로 집요하고 비열하게 공격한 사례는 세계사를 통틀어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도 사실상 언론의 방해를 받았다. 문재인에게 우호적인 언론 속에서 싸웠다. 일부에선 종편과 조중동이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인 편이었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종편과 조중동은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4년간 사사건건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했다. 거의 모든 정책에 대해 시비였다.

우리 정치권, 언론, 관료집단 등 기득권 세력은 애초에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이제는 이 점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그런 거부감은 실은 박정희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박정희를 위대하게 보는 이들도 많은데, 대개는 힘든 삶 속에서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알게 된 소시민들이다. 유승민, 김수남, 정우택, 정진석, 김무성, 김세연 등 탄핵주도, 대통령 구속 세력은 대개 좋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반감을 갖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최서원 씨 사태가 아니더라도 무슨 꼬투리라도 있으면 탄핵할 태세였다. 이는 지난 총선 이후 여소야대가 되었을 때부터 감지된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서민의 힘으로 일어섰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사람, 박정희에게 고마움을 가지는 사람, 기득권의 부패와 위선을 경멸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섰던 것이다. 서민의 힘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으나 기득권 집단의 쿠데타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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