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나는 중도를 선언한다.

2011년11월16일 11시56분 글자크기








나는 중도를 선언한다.

치열한 논의, 해법을 찾는 토론 이어져야...



오늘날 정치병이 있습니다. 너도나도 중도선언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이명박이 지난날 중도선언을 하면서 보수를 우왕좌왕하게 했습니다. 이번에 박세일이 중도적 보수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요기가 폴리뷰로 나아가면서 중도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돌아봅니다. 우리가 과연 중도를 걸었나?



중도에 대한 고민



과연 중도가 어떤 것이 중도일까요? 종북도 인정하고 보수도 인정하면서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중도일까요? 이들이 모두 국민이니까? 이명박의 중도는 사실 좀 어정쩡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듯이 보이면서도, 보수의 분열을 획책하였고, 한나라당을 지키고, 자신의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보다가도, 한나라당 내에 있는 자신의 계파 이외의 세력을 죽이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비롯한 타 당을 심지어는 종북세력들을 이롭게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의 보궐선거에서 어정쩡하고 소극적인 친이계의 나경원 지원과 내곡동 사저문제는 오히려 나경원을 이용하여 친박세력의 팽을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해볼만한 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니까 모두를 끌어안는다는 말은 하지만 일방적인 고소영정책과 소통부재, 그리고 오히려 촛불족에 휘둘리면서 굴복하는 무소신만 난무한 것이 이명박 중도의 실체였습니다.



박세일은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박세일의 역설에 대해, 보수와 좌파 모두 심드렁하게 보입니다. 좌파에게 있어서는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보수에게 있어서도 1. 도대체 중도라고 말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경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을 뿐더러, 2. 그러한 새로운 해쳐 모여가 과연 지금의 썩어 문드러지고 무사안일한 한나라당을 얼마나 쇄신할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에 의문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념에 있어서 중도가 가능할까? 저는 솔직히 수차례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도를 정의하기 위한 고민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이념의 중용이 가능할까? 네이트의 아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이 아해들은 좌파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북한의 썩어 문드러진 모습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 오히려 찬성이 반대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란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모습에서 가장 많은 찬성을 얻은 글이 "미국의 패권주의가 비록 부정적인 모습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세계 질서를 바로잡는데 미국과 같은 나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논조의 글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반미의 글이 아니라 바로 그런 글이 가장 많은 찬성을 얻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기사에서 전쟁나면 총들고 나가서 싸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댓글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분명 북한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고 김정일 정권을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반미로 일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필요악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한 안보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젊은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한미 FTA에 대해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이유 중에, 어떤 이들은 한나라당이 왜 FTA가 필요한지 젊은이들을 상대로 설득할 생각은 전혀 안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것이 싫어서 반대한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속한 교회 내에서 두가지 부분에 있어서 갈등의 모습들을 통해서 고민을 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원래 으싸으싸 데모나 하는 한신대 찌끄러기들과, WCC의 성향을 가진 찌끄러기들의 종북행위 내지 좌파행위에 대해서는 사실 갈등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간판은 기독교이되 김정일의 환영까지 받는 짝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적 보수 교회 안에서도 우파 좌파의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나름대로 경건하고,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는데도 보수 쪽에 서지 않고 좌파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수에 대한 고민을 한 번 해 봅시다. 우리 보수는 과연 항상 옳았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솔직히 비리의 온상인 한나라당보다 저쪽이 훨씬 위험하니까 거기에 집착하다가 보니 오히려 비리마저도 모르는 척하거나 그것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좌파는 더 악하다는 식의 모습을 우리도 보이지 않았습니까? 저쪽이 더 악하니까 박정희의 공만 오히려 외치고 과에 대해서 정당화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그냥 눈감고 지나가면서 좌파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습니까?



소위 자칭 중도라는 자들이 "보수나 좌파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도대체 그들의 눈에 뭐가 비치기에 그런 발언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어떻게 국가 전복세력과 나라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보수와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보수에게 있어서 커다란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



아해들은 왜 한나라당에 대해 그렇게 미워할까요? 세뇌당한 이유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보여준 행위가 정의롭지 못하다는데에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굳이 말 안해도 여러분들은 진작부터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왜 종북은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느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문제였습니다. 한나라당은 정의롭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정말로 종북들보다 더 정의롭지 못함이 아니라 그들과의 대화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뿐입니다. 거기에 비해 종북들은 젊은이들의 문화 속에 침투했습니다. 그리고 소통을 하였습니다. 그들도 종북은 나쁘다는 것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친숙해짐 속에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사실입니다.



원래 가짜 기독교는 좌파적이라 하더라도 나무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왜 정통 신학을 가지고 있는 장로교(고신) 장로교(합동) 장로교(합신) 안에도 알게 모르게 좌파 지도자들이 들어와 있을까? 그것은 무엇을 우선으로 하느냐는 고민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다수의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상을 중심으로 생각하여서 좌파보다가는 우파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일부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약자편에 서는 일과 여당생활을 너무 오래한 한나라당의 부패를 완화시키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좌파를 선택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중도들이 중도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좌파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다구리를 치며 달려듭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저그떼와 같이 정신없이 달려듭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보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나라당의 비리에 대해 누가 욕이라도 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무관심 내지는 정당화에 쩔쩔맵니다. 사실 한나라당은 보수를 향해 콧방귀도 안뀌는데 그 모양새도 우습지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따끔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성마저도 우리 보수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좌파는 더 거짓되고 위선되기 때문에 중도는 끝까지 중도로 남아 있으면서, 스스로 중도를 자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헷갈려서 이념문제까지 희석되어 버리는 불운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해결.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중도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중도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정직하게 나라를 생각하는 길입니다. 1. 정직하게 나라를 생각한다면, 종북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나라를 생각한다면, 안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2. 정직하게 나라를 생각한다면, 일방적인 글보다가는 소통의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FTA반대하는 놈은 종북이다"라는 일방적인 글은 자칭 중도에게도 부담감을 주고 좌파에 선동된 아해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FTA의 유익과 손해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나열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정의를 추구 합니다. 한나라당이나 기업들의 비리와 부정의에 대해서 이를 갈면서 누가 달려든다고 해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부정과 부패에 대해 같이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을 단죄하기 위해 종북을 선택하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의에 감동합니다.



나의 중도는 이렇다.



그러므로 안보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자는 누구든지 적입니다. 즉 안보에 있어서는 보수 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북은 배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지 우선주의나 성장우선 주의를 모두 수용하여, 토론을 할 수 있는 그러한 그릇을 갖춘 자가 진정한 중도일 것입니다. 정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중도는 안보의식이 투철하고, 경제관념에서는 복지와 성장을 조심스럽게 비교할 수 있으며, 비리가 있는 것은 철저하게 잘라낼 수 있고, 모든 올바른 비판은 두루두루 수용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중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것은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깨끗한 보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폴리뷰에의 제안



우리의 글은 사실 치우쳐 있습니다. 종북주의자들의 잘못에 대해서 성토는 있지만, 종북주의자들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고찰은 아직까지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끼리는 대화가 되지만 이미 중도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이 생기는 대로 이러한 자료들을 모아서 구체적인 학술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코너도 만들고 글도 소개가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좌파들도 적잖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중도들도 들어와서 시험삼아서 우파의 핸디캡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건드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실망해서 돌아선 중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옳은 말은 그대로 수용하는 포용력이 우리 보수에게 필요합니다. 그들의 지적 중에 옳은 것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왜곡되고 악의에 가득찬 것에 대해서는 자료를 제시하는 소통의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한 폴리뷰가 장차 그런 일군을 내부적으로 발굴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 별도의 찬반 코너를 만들어서 공정한 입장에서 토론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은 좌파 쪽의 지식인들 글 중에서 쓸만한 것과 또 우파 지식인 중의 쓸만한 글을 동시에 올려서 비교하게 하고, 또한 네티즌들이 댓글로 혹은 게시판 글로 그 주제에 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면, 나름대로 방문자를 늘릴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고 동시에 올바른 방법을 도출해내거나 그릇된 것들을 교정할 수 있는 장소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분하게 생각할 내용들이 많아 보였는데, 막상 글로 쓰니까 잘 쓰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고민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폴리뷰 대표필진 '김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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