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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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북한에서 알고 지낸 화교, 유우성

Writer : 국민의함성
SUBJECT : 이주성] 북한에서 알고 지낸 화교, 유우성
이주성] 북한에서 알고 지낸 화교, 유우성
글쓴이 : 碧波郞 조회 : 58 추천 : 6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 공무원 간첩 사건의 주인공 유우성(북한에서 본명 유가강[유지아장])은 누구인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당국이 유가강의 북한 행적을 알고 올바른 조사를 하기 바래서이다. 나의 글이 유가강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있어 그를 놓고 공방을 벌리는 정치세력이나 법조인들에게 불리 또는 유리하게 되겠는지는 법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다만 유가강의 사건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조장하고 어느 특정의 정치 장사꾼들이 불순한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나 구실로 이용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가강은 내가 탈북 하기 전 살던 북한 국경도시 회령시에서 유별난 인연으로 알게 된 화교(북한에서 살면서 중국 국적을 가진 한족)출신의 2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말이 별로 없고 사람들에게 곁을 잘 주지 않던 유가강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는 그런 인물로 등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유가강이 '간첩이다. 아니다.'를 떠나 북한에서 내가 그를 알게 되어 지낸 3년 남짓한 기간 보고, 듣고, 느낀 유가강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리는 것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그의 행적을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몇 년째 끌어오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유가강 본인에게도 좋고 사법기관과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저의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가 북한 보위부의 임무를 받고 탈북자로 가장하여 남파 된 간첩인지 아닌지를 알아서 판단 하시기 바란다. 유가강의 집은 회령시 성천동 '남문여관' 후문에서 150m가량 떨어져 있는 거리에 높은 담장으로 들러 싸인 단층 독집(방 크기 :40평 정도 / 마당 50평 정도)이다. 그의 집은 회령시에서 돈과 재산이 5번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생활이 유족한 중국 화교 집이었다. 화교라고 하면 돈과 재산이 많다는 것은 북한에서 살아 본 화교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들인 신의주, 혜산, 무산, 회령, 온성 등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은 돈과 재산이 많기로 북한에서는 유명하다. 그 이유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기 부터 시작 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갈 때 북한 화교들은 중국 국적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드나들면서 식량을 비롯한 식료품, 생활필수품, 가정용품, 전자기기들을 화물차로 가득 실어 북한으로 가져다 팔곤 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고장의 장사꾼들과 타지방(청진, 김책, 단천, 함흥 등) 앞쪽지방의 대도시들에서 온 장사꾼들에게 상품들을 시장 가격보다 조금 싸게 다량으로 넘겨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폭리를 얻곤 했었다. 유가강의 집은 회령에서 주로 TV, 녹화기등 가전제품을 중국에서 많이 가져다 팔곤 한 것으로 기억 된다. 유가강을 내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 서이다. 그를 친구부터 소개 받기 전에도 나는 한 달에 1~2번 꼴로 그의 집에 찾아가 중국에서 가져온 TV와 녹화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을 구입해 청진에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거나 그들이 회령으로 들어오면 유가강의 집에 데려가 소개해 주곤 했다. 2000년대 초기 나는 회령에서 중국과 무역업을 시작 했었다.


유가강을 가깝게 알게 된 동기는 핸드폰이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무역업을 한다는 것은 중국의 상품 가격을 알고 물자를 내오는 날자와 시간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으면 무역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가강의 집은 중국에 친척들이 많아 중국에서 장사 물자를 내오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은 회령시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 한 사람인박원철(가명)의 아내 최순옥(가명)이 때문이었다. 2001년봄이라고 생각된다. 하루는 박원철이 나에게 자신의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령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고있는 중국화교가 중국으로 전화 할 일이 있어 그러니 핸드폰을 사용하게 하면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고 했다. 북한에서 핸드폰 전화비는 중국에서 넣어 주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그 당시 국경 지역에서만 중국과 핸드폰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기지국도 중국에 있었다. 무역을 갓시작한 나로서는 전화비를 자주 넣어 달라고 중국에 부탁하기 몹시 부담스러운 때여서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 당시 북한에서 핸드폰을 남에게 쓰게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한 것은 핸드폰 사용에 대한 북한 사법당국의 금지령이 내렸었기 때문이다. 북한 보위부에서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사용하는 것은 반국가 행위와 같이 취급했다. 핸드폰으로 국가비밀을 넘기거나 적대행위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주었다가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는 것이북한 보위부에 알려지는 날이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 엄청난 곤욕을 치르어야 하는 일이다. 보위부 사람들은 핸드폰 소유자를 체포하여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이유, 구입경로, 핸드폰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


특히 한국과 전화한 일이 없는가를 별의 별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 내곤 했다. 핸드폰 주인뿐 아니라 핸드폰을 판사람, 한번이고 두번이고 사용한 사람이라면 죽기를 각오해야 했다. 국경지역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거나 공개 총살을 당한 사람들의 80% 이상이 핸드폰 사용자들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잘 알 수 있다. 핸드폰으로 한국과 통화를 하다 북한 보위부에 잘못 걸려 반역행위로 낙인 찍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든가 아니면 공개처형을 당해야 한다. 친구 박원철의 아내 최순옥(회령시 동 담당 병원의사)은 유가강과 회령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유가강은 청진 의학대학에 통신(일하면서 자체로 대학 공부를 하는 제도)을보며 회령시 병원에 준의사(의사가 되기 전 직책)로 근무하고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누구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때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박원철이나 그의 아내 최순옥이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이유는 그의집 아파트에서 중국과 전화통화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과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박원철의 집에서 전화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변의 위험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일을 박원철네 집에서 허물없이 할 수 있은 것은 박원철과 그의 아내 최순옥과 우리 집 사이 관계가 인간적으로 가까워서이다. 박원철의 아내 최순옥은 나의 아내와 어릴 때 부터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었다. 최순옥은 유가강이 화교인 까닭에 생활적으로 신세를 많이 지고 또 그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그들 사이도 어지간히 가까운 모양이었다. 최순옥이 나에게 유가강이 중국 친척집에 전화 할 일이 있는데 핸드폰을 한번 쓰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사용하다 보위부에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라고 하자 최순옥은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 것은 유가강이 회령시 보위부 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에 단속을 당해도 문제가없다는 것이었다. 최순옥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이유는 보위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시보위부에서 필요한 물건이라든가, 생활필수품은 화교들을 통해 많이얻고 있기 때문에 화교들과 보위부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화교들은 중국에서 필요한 물건과 식량을 트럭으로 가져와 북한 장사꾼들에게 팔아야 살수 가 있다. 북한에서는 화교들이 보위부의 요구나 말을 듣지 않으면 중국에 오갈 수 없기 때문에 싫든 좋든 북한 보위부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여권을 보위부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한번은 유가강과 함께 최순옥의 집에서 전화를 하고나서 소주를 한잔 함께 한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유가강에게 어떻게 중국에 자주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가 물었더니 웃으며 회령시 보위부의 요구를 들어주면 쉽게 중국여권을 낼수 있기 때문에 자주 중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다. 회령시 성천동 담당 보위부 지도원은 유가강의 집에 제집 드나들 듯이 했고 회령시 보위부에서도 유가강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나로서는 최순옥이 유가강의 말이 맞다고 생각 했었다. 친구 박원철과 아내 최순옥이장담하고 또 그들과 가까운 사이라 내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들어주기로 했다. 전화비를넣기 힘든 때어서 유가강이 중국 전화를 몇번 하고 위안화 100원을 전화비로 넣는 것도 괜찮은 장사였다. 전화비 위안화 100원을 넣으며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때어서 3개월 정도를 쓰곤 했다.


한마디로 핸드폰을 함께 사용하는 정도이면 웬만히 가깝거나 사람 파악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2002년12월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회령천 가까이 있는 회령인민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아파트 집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다 북한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평양 국가보위부에 적을 두고 국경지역에 주재하고 있으면서 중국과 한국으로 오가는핸드폰 전파를 탐지하거나 추적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임무를 맞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회령에도 그런 사람들이 전파탐지기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중국과 핸드폰 통화를 하면 장소를 추적하여 체포해내고 있었다. 그들도 회령시 어느 장소가 핸드폰 통화가 되고 안되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전파 탐지국 요원들이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다가 핸드폰 전파가 들어오면 차로 이동하여 급습하기 때문에 핸드폰 통화를 5분 이상 하면 안되었다.그날 따라 중국과 통화가 조금 길어져 10가량 했는데 그만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이 내가 전화를 하고 있던 집 문을 부스고 들어오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 일로 1주일 가량 회령시 보위부에 끌려가조사를 받았다. 중국에서 물자를 내오는 일로 핸드폰을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 나의 직업이 무역기관 책임자였고 평양 본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다행히 벌금40만원 물고 삼성 핸드폰을 빼앗기고 풀려났었다. 그때 유가강이 전화했던 전화번호가 그핸드폰에 남아있어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핸드폰에 찍혀 있는 전화번호의 출처를 대라고 곤욕을 치르며 유가강이 중국에 전화 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유가강이 보위부에 끌려가 엄청난 처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일 없는 것을 보고 확실히 보위부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다른 일반 사람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가강과 나는 핸드폰으로 중국과 전화를 하면서 잘 아는 사이가되었다. 2003년 봄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내가 중국에서나오는 상품들의 가격을 유가강의 친척들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중국 가격을 알아야 북한에가지고 나오면 얼마나 마진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가강에게 부탁한지 2주정도 지나도 그가 나타나질 않아 그의 집에 가보니 그의 부모들이 하는 말이 당분간 집에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여러 번 찾아가 유가강의 부모님들에게 아들과 내가 약속한 일을 말하고 유가강이 어디 갔는지 말해 줄 수 없는가 고 따졌다. 그때야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유가강이 중국으로 영원히 살려고 들어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물건 가격을 알아 봐주겠다고 약속 해놓고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에서 였다. 그렇게 유가강이 다시는 볼수 없으리라 했던 나는 뜻밖에 한국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내가 북한을 떠나지 않으면안될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나의 친구가 중국에 갔다 오겠다고 하여 보내준 것이 그가 한국으로 도주를하는 바람에 국가 보위부에 발각 되면 수용소에 끌려갈 판이었다. 북한에서는 한국 행을 도와준 사람은무조건 공개처형 아니면 수용소에 넣어버리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앞뒤를 생각 할 겨룰이 없이 북한을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


2006년10월 하나원을 나와 정부로부터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임대 아파트에 배정받아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해 11월 중순 경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오후 5시경 밖에서 일을 보고 4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던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년전 북한에서 중국으로 갔다고 하던 유가강이 나의 앞을 지나 가는 것이었다.사라져 가는 유가강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내가 잘못 보지 않았나.' 보고 또 보아도 분명이 내가 알던 북한 회령의 유가강 이었다. 며칠동안은 서나 앉으나 그의 생각이었다. 내가 잘 못 보지 않았다면 중국으로 갔다는 화교인 유가강이 어떻게한국에 와 있을까?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돈을 벌려 많이 온다더니 유가강이도 돈을 벌려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유가강의 집은 북한 회령에서 잘 살고 돈이 많기로 소문난 집인데 한국에 돈 벌려 왔다는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다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이런 생각 하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유가강을 보게 되었다. 단지 아파트 보도 블록에서 만났을 때 나는 유가강에게 북한 회령에서 오지 않았는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는 이렇다 할 아무런 대꾸 한마디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를 지나쳐 보내고 나서 나는 '회령의 유가강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핸드폰 사용을 함께한 내가 유가강을 몰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유가강이 나를 피할까. 수수께끼 같은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던 나는 유가강이 어디서 사는지 알아 볼 생각을 해보았다. 후에도 그와 한 아파트에서 사는 까닭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유가강이 올라가고…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어 올려다 보면 사람이 집을 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마자 그가 어디로 가는지 밖에서 지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가강이 내가 살던 집의 위층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달 정도 지나 나는 우편 배달을 해볼 생각으로 9인승 스타렉스 승합차를 할부로 구입했다. 어느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유가강이 웬 여성과 대우자동차인 마티즈 같은 디자인의 빨강색 경차를 타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후인 2006년12월 관계 기관에 유가강의 행적에 대해 알리고 추적해 보라고 이야기 했었다. 2008년 5월 나는 마포구 X X 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유가강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탈북자로 위장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언론에 보도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최근에 북한에서 유가강을 알게 되어 지나온 과정을 짧게 돌이켜 보았다.북한에서 부러운 것 없이 살던 유가강이 왜 중국으로 건너 갔으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탈북자 행세를 해가며 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가강이 탈북민들과 단체들의 명단을 북한 보위부에 넘긴 것이 사실인지… 그것이사실이라면 그는 마땅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그가 증언한 이야기를 들어보며 여러가지 개인적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유가강을 처음 한국에서 만났을 때 관계기관이 나와 함께 '북한 쪽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의 정체를 알아 보았으면 이번과 같은 황당한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


나는 유가강의 사건을 놓고 그를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론을 악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수백만의 북한 동포들이 독재자의 칼에 맞아 쓰러져가도 입 한번 뻥긋 안 하고 외면하던 사람들이 수사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살판났다며 왜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유가강이 북한 보위부 임무를 받은 간첩인가 아닌가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유가강 사건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끌고가 자신들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과 이해관계에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 장사꾼들과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을 해체시키고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섬찟한 생각이 들곤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 지령을 받지 않고서야 백주에 한나라의 안보를 총괄하는 기관을 뒤집어 놓으려고 난리를 부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법기관의 수사가 올바른 방향에서 진행되어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어느 특정 기관이나 사람들을 흠집내고 파면시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에 악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부와 국민들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이용하여 어부지리를 얻고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어 보려는 그 어떤 행위도 단호히 배격하고 유가강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여 법과원칙에 따라 처리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추천 : 6
Written Time : 2014-03-19 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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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시장이 전라도 출신이라는거 처음알았네

서울부시장이 전라도 출신이라는거 처음알았네
글 쓴 이 : ilbe 등록일 : 2014-03-27 00:55:01 | 조회 : 10 | 추천 : 2
서울부시장이 전라도 출신이라는거 처음알았네


Screenshot_2014-03-26-19-28-34.png 김근태 장관시절 보좌관하다가 한동안 백수로 있던 인간을 부시장 감투씌워줬노...
전라도 광주에서 고등학교 나오고 성균관대 신방과나와서 총학생회장까지 한 운동권출신이다. 박원순도 운동권...
그런데 한 순간에 대한민국 수도 정무부시장.
그간 경력을 보면 보좌관, 비서질만 했던 양반이다.
행정경험제로. 전형적인 코드인사가 아닐수없다.
우덜식 인사체계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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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간첩혐의자 유우성 관련 저변 여론

화교 간첩혐의자 유우성 관련 저변 여론
간첩과 빨갱이들이 합작해서 국정원 흔들어
조영환 편집인

탈북자로 위장하여 북한을 몇 번이나 들락거린, 서울시청 근무한, 간첩혐의자 유우성에 대한 여론은 어떠할까? 1심 재판부도 “수사관들로부터 폭행 협박 및 가혹행위나 세뇌 또는 회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진술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시했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유가강의 여동생은 “오빠는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민변은 유우성이 간첩이 아니라고 비호하고, 결국 1심판사도 간첩이 아니라고 판결했을까? 이런 이상한 판결과 비정상적 변호에 상식적 혹은 정상적 네티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네티즌들은 좌익매체들이 화교 간첩혐의자 유우성을 띄우는 것을 지적하면서, 좌익야당도 화교 간첩 유우성을 비호한다고 비난했다. 유우성 간첩사건은 교란과 혼동 속에서도 시간의 심판을 받으면서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한 네티즌(저스티스리그7 일베회원)은 “위장 탈북 간첩 유가강에 대한 간첩 혐의 입증 증거 속출!(http://www.ilbe.com/3226868463)”이라는 글을 통해 “위장탈북 화교간첩 유가강의 여동생은 ‘오빠는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그러나 유가강에 대한 1심 공판에서 가려씨는 돌연 자신의 진술을 돌연 뒤집었다”며 “오빠 유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그의 진술로 오빠가 중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집요하게 자극하자 대성통곡을 하며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 공작원 홍모(40) 씨의 진술에 따르면 남파 직전 ‘붙잡히더라도 폭행이나 고문이 없으니 석 달만 버티면 된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며 유우성의 버티기와 말바꾸기를 의심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 공무원 출신인 김씨는 ‘북한에서 남산지하실에 가면 절반쯤 죽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조사관들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다고 했다”며, 그(저스티스리그7 일베회원)는 “검찰 측도 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상당히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했다면서 당시 진술을 영상으로 녹화하기도 했다고 강조 했으며”라며 “이처럼 위장탈북 화교 간첩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속속 나오는 가운데 오늘 검찰이 유가강에 대한 간첩혐의 공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쪼록 끝까지 유가강의 혐의를 입증해 간첩의 실체를 모조리 보여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민변과 언론과 야당이 단기적으로 국정원이 간첩 유우성을 날조한 듯이 선동했지만, 장기적으로 서서히 전체적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또 한 네티즌(도끼사랑 일베회원)은 “유우성 화교간첩을 보호하는 민주당(http://www.ilbe.com/3226622669)”은 “한걸래 개향 뉴시스 개컷 등등 좌빨 찌러시는 이화교 놈을 보호하는 기사를 연일 올리고 있다. 왜 이 좌빨 놈들이 화교간첩을 보호하는 것이지? 정보부족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이 화교 한 놈을 가지고 국정원을 때리고 있다. 자기나라 정보원을 감싸지 못할 망정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피해 의식으로 자기나라 정보원을 죽이고 있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hyi 일베회원)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같은 코드 혹은 한통속이라서 아님? 자기들도 구린 짓 하고 있어서”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끌리면와라)은 “권차장으로 모자라서 아직도 지랄들이냐”라고 했다. 네티즌들은 좌익 매체와 야당과 민변과 간첩혐의자가 친화적 관계임을 간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글에 한 네티즌(트니스피어스 일베회원)은 “야당 제정신 아님. 정부 여당 까려고 간첩까지 묻지마 이용. 야권에서 종북들이 신나게 활개치는 이유가 있음. 화교간첩이 대낮에 당당하게 가두에서 변명 인터뷰까지 하고 대한민국 어쩌다 이 지경임?”이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AWTYO 일베회원)은 “아 민족의 영웅이신 유가강, 우리 노빠들은 유가강 그 이름만 들어도 그 거룩함에 눈물이 주루룩”이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백머리행님 일베회원)은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라고 했고, 또 한 네티즌(순결남탕아 일베회원)은 “민주당이 아니라 유우성이가 민주당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데”라고 했다. 탈북자로 위장한 화교간첩혐의자 유우성은 그를 편든 민변과 야당에게도 화를 입히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애국단체총연합회는 “야당이 국정원의 對共수사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논평(성명)을 통해 “금번 증거문서 위조 사건은 화교 류지아강 간첩사건에서 파생된 사건이다. 사건의 본질인 간첩은 반드시 잡아야 하며, 문서 위조 사건은 출처인 ‘협조자’의 단독범행 여부를 확실히 조사하여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국정원 대공수사의 전문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야당은 지금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 이번 사건을 국정원의 조직적인 증거조작으로 몰고 가면서 사건의 본질을 떠나 정치문제로 극대화하여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사건 초기에는 야당의 모 의원이 주선양총영사관까지 직접 방문했고, 국회에서 노출되면 안 될 요원의 실명까지 공개하여 對共수사 기반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야당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애국단체총연합회는 “야당은 그동안 국정원의 對共부서가 주시하고 있는 종북반국가세력과 연대하여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자를 비롯한 RO조직원들을 국회에 진출시킨 종북 숙주역할을 해왔다. 더욱이 국정원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NLL포기와 북핵 변호인 역할’ 등 반역적 발언을 공개,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야당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야당은 국정원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당리당략을 떠나서 정치권은 국가안보를 위해 국정원의 개혁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만일 야당이 의도적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능을 마비시키려 한다면, 이것은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최근 우익애국단체들은 화교 간첩혐의자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하는 좌익 야당과 단체와 매체의 국정원 파괴선동을 경계하고 규탄하고 있다.

이런 애국단체총연합회의 성명에 대해 한 네티즌(하루에5억 일베회원)은 “국정원 흔드는 목적은 한가지다 적화통일 남한 간첩과 빨갱이들이 합작해서 나라 적화통일 시키는 게 목적이다. 이년놈들은 서울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북괴 증거 가지고 오라고 하고 국군이 훈련하다가 실수다 미군이 훈련하다가 실수다 온갖 유언비어 만들어 분탕으로 멸망토록 한다”고 했고, 다른 네티즌(뿌라진짝대기 일베회원)은 “북괴가 남한과 미국에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는 게 있단다. 바로 정보자산이란다. 각종 대남사업은 바로 우위의 정보자산으로 하는 거다. 518, 천안함, 연평도, 서울시 간첩사건 등등 미국과 남한은 이미 북괴의 상대가 아니다”라며 “참고로 북괴정보 자산은 남한 내 종북들이고. 향우회가 밑거름이다. 이것만 깨면 남북통일된다”고 반응했다.

그리고 한 네티즌(kji 일베회원)은 “중국놈이야 중국놈이 다른 나라에서 북한 간첩질 했다니 당연 부정하며 은폐하려 하겠지. 그리고 중국놈들이 그 간첩혐의자놈 비호할라고 자료들을 공식적으로 요청해도 안 떼줘서 비공식 루트로 얻으려다 이렇게 된 것일뿐 일부러 조작한 게 아니지. 처음에 그놈 간첩으로 기소할 때와 1심판결에서도 다른 증거와 증언들로 기소한 거고, 1심 끝나고 항소심에서 증거 보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임. 검찰이 중국놈들이 협조 안 해서 자료 입수가 어려우니까 국정원에 부탁한 거. 그리고 중요한 건 그놈이 간첩인가 아닌가이지 이게 아니지. 수많은 증거 중 지엽적 증거 하나로 이렇게 국정원을 난도질하고 있음”이라며 화교 출신의 간첩혐의자가 가진 복합적 변수들을 지적했다.

그 네티즌(kji 일베회원)은 “유우성이 제출한 자료야 말로 이상하거든. 유우성 자료도 합법적 루트로 얻을 수 있는 자료도 아닌데다, 오류까지 있는 신빙성 안가는 자료임. 같은 날 북한에서 나온 기록만 두 번 있고 들어간 기록은 없는 게 제대로 된 자료겠음.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18/20140318005434.html?OutUrl=naver (중국,북한 이중간첩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님. 중국에서 조직적으로 비호하는 느낌)”이라며 “그리고 유우성 담당판사 일심회 간첩단(노무현 때 터진 간첩사건) 간첩에게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이 배상하라는 판결 내렸던 판사임(이유는 간첩의 간첩질한 사실을 공표해 간첩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어이없는 이유). 민변은 썩었고 판사나 검사도 다 믿을 게 못되는 현실”이라고 반응했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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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3/27 [20:02] 최종편집: ⓒ 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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