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의 진짜 원인
세월호 사건으로 사회가 들끓고 있을 때였다. 세월호의 선주가 되는 종교단체를 이끌어 가는 유병언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온 국민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교만한 눈빛에 고급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면이 하루 종일 종편방송에 반복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무렵 한 종편의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경찰청의 간부가 나와서 미국 TV에서 헬기로 범인의 도주 장면을 중계하듯 유병언이 지금 어디쯤 숨어 있을 것이라고 실시간으로 떠들어 댔다. 유병언의 운전기사였던 남자가 나와 그가 권총도 소지하고 있었다며 사회의 흥미를 부추겼다.
수사도 재판도 받기 이전에 이미 그는 방송에서 하는 인민재판으로 인생이 침몰해 버렸다. 그는 세월호를 운전하지 않았다. 선장도 아니었다. 법은 사고를 낸 배나 자동차의 소유자라고 해서 살인죄의 책임을 물리지는 않는다. 국민적 증오의 물결은 이미 법의 방파제를 넘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유병언을 인터뷰를 했던 원로기자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유병언 씨의 종교단체를 사악한 집단으로 몰아버리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아요.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일자리를 주고 살게 해 줬어요. 유병언 씨 자신이 손재주가 좋은 것 같았어요. 그 재주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먹고 살게 한 거죠. 저는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유병언의 예술적 허영심이라고 봅니다. 인터뷰를 할 때도 끝없는 자기 자랑이고 자기 말뿐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세월호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보는 거죠.”
원로기자가 한 설명은 대충 이랬다. 유병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다양한 사람이었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그는 창문 앞에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시간의 깊숙한 심연을 찍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창문 앞에 해가 뜨고 까치가 날아와 고인 물에서 몸을 씻고 활짝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갔다. 붉은 낙엽이 떨어지고 하얀 눈이 축복같이 가지에 덮이기도 한 장면들이 그의 망원렌즈에 잡혔다.
수천 장 수만 장 시간을 찍은 사진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사진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이 유럽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파리에서 전시됐다.그는 세월호의 한 층을 더 증설하라고 했다. 새로 만든 공간은 그의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였다. 수평선으로 내려앉는 석양을 보면서 커피향 짙은 바다 위의 갤러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배의 한 층을 증설하면 그만큼 위의 무게가 늘어나면서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 당국에서 허락한 배의 톤수를 맞추려면 배의 바닥짐 같이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빼버려야 했다. 배는 머리통이 큰 난쟁이 같이 되어 버렸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운명의 배에 올랐다. 남해바다의 섬들을 돌 때 조타수는 변침을 했다. 다른 배 같으면 30도까지 꺾어도 배가 기울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보다 작은 변침에도 옆으로 쓰러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깊은 바다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원로기자는 유병언의 허영심이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유병언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봐야 하는 종교인이었다. 내면에 있는 영혼의 산을 보고 거기에 오르는 게 종교인의 본질이 아닐까. 대형교회의 목사들 중에는 거대한 크루즈선 같이 화려하게 지은 건물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 외국원수들과 만나서 찍은 사진을 화려한 교회 복도에 장식하기도 하는 걸 봤다. 시선이 천정을 향하면 바닥을 볼 수 없듯이 허영으로 시선이 바깥을 향하면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 결과는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유병언을 인터뷰를 했던 원로기자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사회가 들끓고 있을 때였다. 세월호의 선주가 되는 종교단체를 이끌어 가는 유병언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온 국민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교만한 눈빛에 고급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면이 하루 종일 종편방송에 반복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무렵 한 종편의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경찰청의 간부가 나와서 미국 TV에서 헬기로 범인의 도주 장면을 중계하듯 유병언이 지금 어디쯤 숨어 있을 것이라고 실시간으로 떠들어 댔다. 유병언의 운전기사였던 남자가 나와 그가 권총도 소지하고 있었다며 사회의 흥미를 부추겼다.
수사도 재판도 받기 이전에 이미 그는 방송에서 하는 인민재판으로 인생이 침몰해 버렸다. 그는 세월호를 운전하지 않았다. 선장도 아니었다. 법은 사고를 낸 배나 자동차의 소유자라고 해서 살인죄의 책임을 물리지는 않는다. 국민적 증오의 물결은 이미 법의 방파제를 넘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유병언을 인터뷰를 했던 원로기자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유병언 씨의 종교단체를 사악한 집단으로 몰아버리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아요.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일자리를 주고 살게 해 줬어요. 유병언 씨 자신이 손재주가 좋은 것 같았어요. 그 재주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먹고 살게 한 거죠. 저는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유병언의 예술적 허영심이라고 봅니다. 인터뷰를 할 때도 끝없는 자기 자랑이고 자기 말뿐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세월호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보는 거죠.”
원로기자가 한 설명은 대충 이랬다. 유병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다양한 사람이었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그는 창문 앞에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시간의 깊숙한 심연을 찍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창문 앞에 해가 뜨고 까치가 날아와 고인 물에서 몸을 씻고 활짝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갔다. 붉은 낙엽이 떨어지고 하얀 눈이 축복같이 가지에 덮이기도 한 장면들이 그의 망원렌즈에 잡혔다.
수천 장 수만 장 시간을 찍은 사진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사진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이 유럽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파리에서 전시됐다.그는 세월호의 한 층을 더 증설하라고 했다. 새로 만든 공간은 그의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였다. 수평선으로 내려앉는 석양을 보면서 커피향 짙은 바다 위의 갤러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배의 한 층을 증설하면 그만큼 위의 무게가 늘어나면서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 당국에서 허락한 배의 톤수를 맞추려면 배의 바닥짐 같이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빼버려야 했다. 배는 머리통이 큰 난쟁이 같이 되어 버렸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운명의 배에 올랐다. 남해바다의 섬들을 돌 때 조타수는 변침을 했다. 다른 배 같으면 30도까지 꺾어도 배가 기울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보다 작은 변침에도 옆으로 쓰러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깊은 바다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원로기자는 유병언의 허영심이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유병언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봐야 하는 종교인이었다. 내면에 있는 영혼의 산을 보고 거기에 오르는 게 종교인의 본질이 아닐까. 대형교회의 목사들 중에는 거대한 크루즈선 같이 화려하게 지은 건물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 외국원수들과 만나서 찍은 사진을 화려한 교회 복도에 장식하기도 하는 걸 봤다. 시선이 천정을 향하면 바닥을 볼 수 없듯이 허영으로 시선이 바깥을 향하면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 결과는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 2017-08-04, 01:26 ] 조회수 : 2594 |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