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사단 공연서… 가수들이 노래 대신 사과
주희연 기자
 
입력 : 2017.06.12 03:10
[민노총·노동당 등 반대시위… '부대 창설 100주년 콘서트' 파행]

"효순·미선 추모식 사흘 앞두고…" "의정부시가 미군 행사에 돈 쓰나"
네티즌 불참 협박전화·댓글도

부친이 美軍이었던 인순이, '아버지' 노래 못하고 "죄송합니다"
EXID 등도 공연 '벼락치기 취소'


"죄송합니다.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부득이하게 노래를 못 하게 됐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6시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 콘서트'. 1층부터 3층까지 꽉 메운 관객 3500여명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이날 오프닝 무대를 준비한 가수 인순이씨는 붉은색 정장을 입고 무대에 나와 노래는 하지 않고 머리만 연신 숙였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지난 10일 오후 6시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 콘서트’무대에 오른 가수 인순이씨가 관객들을 향해“노래를 못 하게 됐다”고 말한 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6시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 콘서트’무대에 오른 가수 인순이씨가 관객들을 향해“노래를 못 하게 됐다”고 말한 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6시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 콘서트’무대에 오른 가수 인순이씨가 관객들을 향해“노래를 못 하게 됐다”고 말한 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반대하는 일부 단체와 네티즌들의 항의 때문에 EXID·오마이걸·스윗소로우 등 다른 유명 가수들은 콘서트 출연을 취소했다. /추계E&M


이날 콘서트는 의정부에 본부를 둔 미 2사단의 창설 100주년을 맞아 의정부시가 미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토머스 밴달 미 8군사령관 등 미군 간부 50여명과 미 장병 400여명, 시민 3000여명이 참석했다. 입장료는 없었다. 의정부시는 인순이·크라잉넛·EXID·오마이걸·스윗소로우·산이 등 유명 가수와 걸그룹들을 초청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엔 인순이씨와 크라잉넛을 제외한 다른 가수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크라잉넛도 사과만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콘서트가 파행한 이유는 일부 단체의 반대 때문이었다. 민주노총·노동당 등은 지난 5월 말부터 "하필 미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미선이 사망일을 사흘 앞두고 미군을 위한 공연을 하느냐" "왜 부족한 시 예산으로 미군을 위한 행사를 여느냐"고 주장을 하며 의정부시에 콘서트 취소를 요구했다.

인순이씨는 이날 대표곡인 '아버지'와 '거위의 꿈' 등 3곡을 부르기로 했지만 한 곡도 하지 못했다. 무대에 서기 전 대기실에선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소속사 측은 전했다. 그는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주최 측은 결국 오후 7시 30분 "콘서트에 오기로 했던 가수들의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고 안내 방송을 했다. 관객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미 8군 군악대, 의정부시립 무용단·합창단, 태권도, 국악 등 일부 공연만 열린 채 행사는 계획했던 3시간 30분 보다 1시간 일찍 끝났다.

출연 예정이던 가수들은 그동안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집요하게 '불참 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콘서트에 불참한 한 가수 소속사 관계자는 "콘서트에 출연하지 말라는 협박성 전화도 오고, 기사에 악성 댓글도 많이 달렸다"고 말했다. EXID 소속사인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는 이날 팬 카페에 '행사 섭외 결정 시 의정부 시민들과 함께하는 무료 입장 공연 취지에 동의해 출연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소속 아티스트의 신변, 정신적 피해 등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출연 취소를 하게 되었음을 알려 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콘서트에 나오기로 한 가수 대부분이 행사 당일 오전 불참 의사를 전했다"며 "콘서트에 참석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부 네티즌의 압박에 못 이겨 그런 결정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날 행사가 열리기 전인 오후 3시부터는 민주노총 경기북부지부, 노동당의정부당원협의회 등의 소속 회원 10여명이 의정부체육관 입구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연예인을 동원해 미군 창설 축하를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반교육적 행위"라고 했다. 미 2사단 창설일(10월 26일) 무렵이 아니라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량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미선이 사망 사건' 15주년을 사흘 앞두고 행사를 개최한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현재 의정부에 주둔하는 3개 미군 기지가 내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할 계획이라 장병들이 속속 의정부를 뜨는 상황이다"며 "최대한 많은 미군이 있을 때 행사를 개최하려다 보니 시기가 불가피하게 효순·미선이 추모 주간과 겹쳤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찾은 의정부 경민비즈니스고 김모(16)양은 "친구들과 오후 4시 반부터 줄 서서 입장했는데 아무도 공연을 안 한다니 김이 빠졌다"며 "공연이 취소된 이유도 제대로 모른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기획한 추계E&M 관계자는 "한·미 우호 증진과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해 연 자리인데 일부 단체가 정치적 이유로 행사를 파행으로 이끌었다"며 "이번 일이 한·미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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