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바로
[흡수통일]이다!
흡수의 진짜 주체는,
대한민국을 넘어선
세계시장-현대문명, 그 자체이다!
2월 11일 김무성은 새누리 국회의원 120명이 참여한
<통일경제교실> 첫 모임에서 [공존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력통일,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잘 사는, 경제통일을 바탕으로 하는 [공존통일]이 돼야 한다.”
이 발언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통일에 관해서 만큼은, 진실을 진실답게, 진실되게, 직선적으로 말해야 한다.
김무성을 위해서, 통일에 관한 진실을 진실답게, 진실되게, 직선적으로 표현해
본다.
1. 흡수의 진짜 주체는
세계시장-현대문명이다.
김무성에게 묻는다.
“당신은 [흡수통일은 안된다]라고 했는데,
흡수통일의 의미를 한 번 정의해
보라!”
김무성은 제대로 정의하지 못 할 것이다.
원래 국회의원이라 불리는 유인원들 중 태반이 그렇다. “A가 아니라 B이닷!”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A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B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특정 종류의 영장류를 부르는 학명이 [국회의猿]이다. 그래서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국회의 猿](=국회라는 국가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원숭이)이라 쓴다.
김무성에게 [흡수통일]의 참뜻을 가르쳐 주고 싶다.
"흡수의 표면적 주체는 대한민국이지만, 진짜 주체는 [세계시장-현대문명]이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다움은 바로 세계시장-현대문명 한 가운데를 질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통일의 본질이, “북한 주민들이 세계시장 속에 우뚝선 당당한 개인으로 재활/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국체의 차원에서는 [대한민국에 의한 흡수통일]이요, 라이프스타일/문화/정신/심리의 차원에서는
[세계시장-현대문명에 의한 흡수통일]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인데, 흡수통일인 것은 아니다”라는
김무성의 발언은 말이 안 되는 말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김무성에게 말한다.
“당신에게 통일은 말 장난의 대상인가? 당신에겐 인생과 인류가 장난인가?”
2. 북한은 [공존의 파트너]가 아니다
공존이라 할 때에는 북한 측에 파트너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김가-천황-전체주의]는 물론 파트너가 될 수 없다.
편집자 주 : 김일성-김정일은, [스탈린
전체주의]와 [모택동 전체주의]를
모방한데 그치지 않고, [일본 군국 천황제 전체주의]까지 끌어다 인류 최악-최후의 [짬뽕
전체주의]를 만들었다. <뉴데일리>는 이를 [김가-천황-전체주의]로
정의한다.
▲ [김가-천황제-전체주의]가 완성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3요소. 좌로부터 스탈린-일본천황-모택동ⓒ뉴데일리 DB
[김가-천황-전체주의]가 붕괴한 이후에는? 그때에도 파트너가 생겨나지 않는다.
고(故) 황장엽은, [김가-천황-전체주의]가 붕괴한 이후에는 북한 측에 파트너가 형성되기를 평생 간절히 기도하다
숨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그것은 고(故) 황장엽의 꿈이었을 뿐이다.
▲ 방부제 속에 누워 영생을 꿈꾸는 학살자 김일성.
▲
지
애비처럼 방부처리 되어 영생을 꿈꾸는 도살자 김정일.
이 사진들이 북한 [金家-천황-전체주의]의 정체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런 체제 속에서 무슨 파트너가
생겨나겠는가?
전체주의 체제를 스스로 해체시켜 자유민주주의, 즉 세계시장-현대문명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강력한 당-관료 및 지식층이 존재해야 한다.
그 첫 테이프는 중국이
[불완전하게] 끊었다. 1976년 모택동이 죽자 3년에 걸친 엄청난 내부 노선투쟁-권력투쟁을 거쳐 1979년부터
개혁-개방으로 들어섰다. 모택동은 죽기 직전 10년 동안의 문화혁명 때 2천만명의 당 관료 및 지식층을 때려죽였지만,
이 박해는 오히려 이들을 더 강력하게 단련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은 불완전하다. 자유민주주의-개인-인권-노동운동-환경운동 등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 두
번째 테이프는 폴란드를 필두로 동구권이 끊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 초중반에 동구권에 대한
소련의 경제지원이 끊기자 동구권의 당 관료와 지식층은 맹렬히 개혁-개방-자유민주주의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적 변화에 10년 앞선 1970년대 후반에 이미, 동구권의 최상층 지식층은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를 그 뿌리부터
극복하고 있었다. [정신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를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동구권 최고의 정치철학자 콜라코프스키는 동구권의 변화가 있기 10년 전인 1976년에 『마르크스
주의의 주요 흐름』(국내 미번역, Main Currents of Marxism)이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내놓았다.
필자 주: Leszek
Kolakowski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철학사 교수를 하다 1966년에 해임된
후 서방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이 책은 “[스탈린주의]라고 불리는 극악한 공산 전체주의의 핵심 유전자가 이미 마르크스 본인의 사상 속에
내재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최초로 증명한 역작이다. 한마디로 “스탈린은 나쁜 놈이지. 하지만 마르크스는 훌륭한
사람이야’라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깨부순 책이다.
콜라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한 셈이다.
“스탈린은 나쁘지만 그 사상적 아비, 레닌은 훌륭하다고?
레닌은 나쁘지만 그 사상적 아비, 마르크스는 훌륭하다고?
웃기지 마! 마르크스야말로 원조 악마야. 마르크스 사상 속에 이미 비밀경찰-대량 숙청-대량학살-집단수용소... 이 모든 악의 씨앗이 몽땅 들어 있어!”
콜라코프스키는, 동구권 지식층의 고뇌와 각성을 대표하는 한 명일 뿐이다. 이런 고뇌와 각성을 이룩한 고급
지식인이 무수히 많았었다. 한마디로, 동구권이 1980년대 후반에 자유민주주의-세계시장-현대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동구권의 정신-사상-문화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테이프는 소련이 끊었다. 1991년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 소련을 해체하고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독립시키고, 나라 자체를 러시아로 바꾸었다. 소련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의 체제를 해체할 수 있었던 힘 역시, 정신과 문화에서 나왔다.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1982년에 이루어졌지만,
베트남을 꼽지 않는 이유는, 베트남의 개혁개방은 중국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1979년 초, 중국 군대
20만명이 공산베트남을 침공했던 사건이 있었다. 베트남군 6만명, 중국군 4만명이 숨졌다. 베트남이 중국의 침공을 물리치긴
했지만,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무지막지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개혁-개방으로 급선회했다.
필자 주: 당시, 중국의 군사력은 보잘
것 없었다. 반면, 베트남은
월남전에서 미국을 물리치며 어마어마한 현대 장비를 노획한 상태였다.
아무튼 자기 내부에서 변화를 일으켰던 공산-전체주의 체제는 모두 막강한 당-관료 및 지식층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이에 반해 북한에는 당-관료나 당-조직 자체가 없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유일사상]이라
불리는사교 교리를 전도하는 세뇌교육체제일 뿐, 당다운 당이 아니다. 당 대회는 1980년 이후 소집된 적 없다. 당
대표자회는 1966년 이후 44년 동안 소집된 바 없다가 2010년에 소집되어 김정은 3대세습을 결정했고 2012년에 소집되어
김정은을 당 총서기로 인정했을 뿐이다. 북한의 [김가-천황-전체주의] 체제는 당에 바탕한 체제가 아니라,
김정일이 1960년대 후반부터 구축하기 시작한 [김가(金家)지배-흑막(黑幕)조직](=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의해
운영되는 기형적 시스템이다.
따라서 북한의 병적(病的) 정치문화는, [김가-천황-전체주의] 체제가 붕괴
이후에, 우리가 [파트너]로 인정할 만한 대안체제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 붕괴-혼란-투항이 뒤죽박죽된 상황이 전개된다.
나는 이 상황을 [내파](內破, implosion)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진공관이 깨질 때처럼, 밖을 향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안을 향해 말려들어가며 우그러지는 상황— 이것이 바로 [내파]이다.
악마는,
헤리포터에 등장하는 [디멘터]처럼, 공허한 존재이다. 공허한 존재가 무너질 때에는 내부의 공허(진공)를 향해
말려들어가며 우그러진다.
김무성은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공존]은 오직 파트너가
있을 때 가능할 뿐이다. 북한의 병적 정치문화는, 파트너를 형성시켜낼 수 없다.
따라서 북한과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붕괴와 내파—이것이 북한에서 벌어질 상황이다. 어쩌면 앞으로 3년 이내에
벌어질 수도 있다.
김무성은 함부로 [공존]을 떠드는 대신, 중국, 동구권, 소련의 개혁-개방 및
변화 과정을 공부하기 바란다.
무식한 주제에 자못 새로운 듯 들리는 용어를 떠벌이면 [건방진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에 대해 그런
건방과 사기를 범하면, [건방지고 위험한 놈]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배지를 차고 그런 건방-사기-위험을 범하면
[나라 말아먹을, 건방지고 위험한 정치 모리배]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 이런 건방-사기-위험-국가파괴를 저지르면 [국가적 재앙]이다. 어쩌면
조만간 김무성을 [국가적 재앙](national calamity)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3. 흡수를 위한 과도기는,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는 [국제공조
임시행정기구](TA)이다.
필자
주: 여러 가지 해법이 가능하지만, 그 중 하나를
제시한다.
북한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한 뒤 3~10년에 걸친 과도기 이후, 국체는 무엇인가?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과도기 자체가, 대한민국이 중핵(中核)이 되고 UN이 모양새를 제공하는 [임시행정기구](Transition
Administration)이다. 바람직하게는 유엔임시행정기구(UNTA)가 좋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엔임시행정기구는 겉모습일 뿐이며 내용은 한국주도임시행정기구(KITA, Korea-Initiated TA)이다.
즉 UNTA는 KITA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주도]인가?
■ 첫째, 유엔임시행정기구(UNTA) 구성의 법률적 근거가 대한민국 헌법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에 바탕한 [대한민국의 한시적 위임] (transitional empowerment by Korea)이다.
예전에 동티모르 지역이 UNTA가 되었을 때에는 지역 주민의 투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이
UNTA가 될 때에는, 주민 투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요청과 한시적 위임(예를 들어 5년)에 의해
이루어진다.
■ 둘째, 한시적 위임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서너개의 직할시와
예닐곱 개의 도)로 흡수된다는 점이 위임 시점에서 이미 명확하게 규정된다. 예전에 동티모르에서 UNTA가 만료되었을
때에는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UNTA 만료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된다.
■ 셋째, UNTA 시작과 함께 북한 주민에게 [대한민국 예비 시민권](preliminary
citizenship)이 주어져야 하고 주민등록 관리와 해외 여행/취업에 관한 영사업무 관리를 대한민국이 맡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이 해외 출장도 가고 해외 취업도 할 수 있게 된다. 과거 70년대, 80년대에 우리가 해외 건설근로자와
원양 선원(船員)으로 일해서 먹거리를 만들고 세계시장경제를 배웠듯이, 그들도 해외로 나가야 한다.
■ 넷째, 북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 일정 기준을 정하여 [made-in-Korea] 원산지
표시를 부여한다. 이로써 북한 지역 생산 제품이 단박에 세계 일류 수준의 브랜드 파워를 갖추게 된다. 이 원산지 표시의 근거는
바로 “UNTA 만료 시점에 대한민국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 확정되어 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일부분이 될 것이 확정되어 있다”는 사정은 또한 북한 지역 투자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불확실성을
없애주기도 한다. 투자가, 대한민국 법률과 제도에 의해 보장되기 때문이다.
김무성의 [경제통일에 의한
공존통일]이라는 11 글자에는, 과도기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럴듯하게 들리는 엉터리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다. 이 같은 공허한 단어 조합을 듣는 것 보다는 우리 집 잡종개의 울음소리를 듣는 편이 훨씬 더 정신건강에
이롭다.
4. 통일이란 무엇인가?
우리 겨레는 복받은 민족이다. 대박 민족이다.
무엇이 대박인가? 경제적 번영이 대박인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일 뿐이다.
그 사정은 이렇다.
일찍이 박정희는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고, [정신의 전쟁]을
일단 뒤로 연기시켰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문제가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정신/가치를 따질 필요도, 따질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박정희는 물질을 선(先)에 두었고, 정신/가치를 후(後)에 두었다.
박정희가 설정한
선후(先後)는 옳았다. 경제발전, 즉 물질번영을 이룩하지 못 한다면, 정신/가치란 특권 엘리뜨들의 유희와 허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정희가 20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발전 지도자 중 한 명이었기에, 그가 중시한
경제발전-물질번영은 더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통찰해 낸 전략적 우선 목표를 정확하게 초과달성한 사람이다. 선후를 제대로 통찰했다는 점, 또한 그 통찰에 의해
식별해 낸 전략적 우선 목표를 정확하게 달성했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의 영웅이며 겨레의 지도자이다.
그러나 이 모두 40년
전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는 박정희의 길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야 한다. 우리에겐 정신/가치가 최우선이다. 그게
해결되면 경제발전과 물질번영이 따라온다. 그래서 통일은 대박이다.
김무성은 [경제통일에 바탕한]을
운운했지만, 우리에게 통일은 [경제]이기에 앞서 [정신/가치의 전쟁]이다.
무엇에 관한 정신/가치인가?
개인에 관한, 겨레에 관한, 인류에 관한 정신/가치이다.
통일은, 존재의 세가지 차원—개인, 겨레, 인류—을 하나의 고갱이로 꿰뚫었다.
■ [나 개인 실존]의 [인간으로서의 공감능력과 자긍심]에 비추어, 북쪽 2천5백만 동포를 더 이상 지옥과 같은
[죽음의 수용소]에 내버려 둘 수 없다. 통일에 관한 이 갈망은 바로, 1945년 봄 유태인 집단 수용소를 해방시켰던 연합군
병사들이 느꼈던 그 위대한 슬픔과 같은 종류의 느낌/깨달음이다. [나 개인]의 온전한
개체성(individuality)을 성장시켜주는 느낌/깨달음이다. 그래서 통일은 [나 개인]의 본질에 관한
비즈니스이다.
■ [겨레]가 번영하는 길은, 이제 통일에 있다. 8천만 단일 민족을 회복하고,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성을
회복하고, 남북 자원을 통합하는 것— 이는 곧 독일과 같은 규모와 수준의 초일류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그래서
통일은 [겨레]의 본질에 관한 비즈니스이다.
■ 이제 [인류]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전체주의 체제는 북한이다. 북한은 인류 최악-인류 최후의
전체주의이다. 북한 전체주의의 실상을 인류 모두에게 전하고, 그 붕괴 이후, 북한 주민의 영웅적인 재활/성장 과정을 지구촌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한국인이 촉발시키는 [인류적 차원의 각성]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통일은 [인류]의 본질에 관한 비즈니스이다.
한반도 통일이 인류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좀 더
살펴 보자.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 역사를 [문명 사이의 경쟁]으로 보았다. 서유럽문명,
동구-러시아 문명, 아랍문명, 인도문명, 동아시아 문명… 이런 문명들 사이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바로 20세기라고
보았다.
그러나 토인비는 틀렸다. 20세기 역사는 문명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때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체제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개체)과 교환(시장)이다.
즉 20세기 역사는, “개인을 부수어 천국 국가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와, “개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세계 시장 체제의 발전” 사이의 거대한 아마겟돈이었다.
어쩌면 호모-사피엔스
20만년의 역사는 [개인됨(individuality)과
세계시장]을 향한 기나긴 여행 과정이었던 것 아닐까?
인류가 믿는 가장 위대한 두 개의 종교—기독교와 불교—가
모두 [개인 실존]에 관한 종교인 것 역시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궁극적 지향이 [개인됨]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존재를 [신 앞에 홀로 선 개인]이라고 파악했고, 불교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개인의 깨달음]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분업과 교환—즉 시장—역시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궁극적 지향이다. 이에 대해서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수없이 밝힌 바 있다.
전체주의에 대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개인됨](individuality)과 [분업-교환](시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무성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바탕한 공존통일”이란, 말장난 혹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흡수통일”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 진실이 [생명번영에 봉사하는 기사(騎士)] 역할을 배우기 시작했다. 생명의 길을 지키는 사나운 싸움꾼이 되어 가고 있다.
전투력을 갖춘 진실은 적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힘과 용기를 시험해 볼 기회를 간절히 갈망하기
때문이다.
김무성 같은 잘 나가는, 범털 정치인에게 충고한다.
“진실을 적으로 삼지 마.
(쉿! 천기누설이야! 특히 통일에 관한 진실을 적으로 삼지 마. 통일은
개인실존, 겨레, 인류— 이 세 개 차원 모두가 통합된 비즈니스이거든… 쉿!)
요즘 진실은 사나운 싸움꾼이 되었어. 진실은 적을 찾아 헤매고 있어. 적의
심장을 가르고 목을 쳐서 피를 뒤집어 쓰고 싶은 욕망에 몸이 달아 있어…
설마 당신의 목과 심장을 내주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