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교회의 식당 벽화, '최후의 만찬' 앞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선언한 직후의 순간을 잡은 것이다.
몇년 전 北이탈리아 도시 밀라노에 가서 레오날드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구경하려 갈 때였다. 체코 남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코모를 출발한 뒤 밀라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인 대성당으로 향했다. 운전사는 밀라노가 처음이라고 했다. 중심부로 들어가는 데도 몇 번 길을 혼돈했다. 겨우 대성당 앞에 당도한 것은 오후 4시. 우리는 운전사에게 오후 5시에 같은 장소로 와서 대기해달라고 부탁한 뒤 대성당 구경을 하고 같은 장소로 돌아왔다.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 6시부터 '최후의 만찬'을 보기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 5시20분이 되어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하고 사람들을 급히 불러모으는데 모퉁이를 도는 흰색 버스가 보였다. 우리 버스였다. 유럽 여행의 成敗는 버스 기사에게 달려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15세기 말에 브라만테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체 교회였다. '최후의 만찬'은 오랜 복원공사로 해서 일반 공개가 금지되어 있다가 그 몇년 전부터 제한 공개를 하고 있다. 20명 이하가 단체로 15분만 관람할 수 있다. 이 교회와 그림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교회의 식당 벽에 그린 그림이 '최후의 만찬'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본 그림이 나타났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만찬을 하고 있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입체적으로 生動한다는 인상을 가장 먼저 받았다. 원근법 덕분에 벽속으로 따로 방이 하나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서 예수가 만찬을 주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도 모두 움직인다. 표정이 제각각 심각하다. 그들의 손짓이 긴박한 그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나는, 손이 말처럼 수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그림을 보고 알았다.
가이드는 이 그림의 특징에 대해서 만찬을 가로 한 열로 배치한 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원탁에 모이는 구도를 깨고 옆으로 벌여놓은 것은 인물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게 함으로써 구경하는 이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그림의 순간은 요한복음에 나온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하루 전 열두 제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저녁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빵)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셨다가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은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하략).'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선언한 직후의 순간을 잡은 것이다. 열두 명의 제자들은 놀라고 의아해 하고 불안해 하면서 또 서로를 의심하고 혹시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겁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 그림을 보면 등장 인물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구지?'
'네가 예수님에게 물어봐.'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정말이야?'
'저 놈 아닐까.'
'이걸 어쩌지.'
이 그림은 세 사람끼리 뭉쳐서 수근수근하는 모습이다. 예수의 왼쪽 손은 빵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의 인물인 가롯 유다는 예수쪽으로 얼굴을 돌린 바람에 표정이 보이지 않고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 있다. 유다의 등뒤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처리된 손이 칼을 잡고 바깥으로 쑥 나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배신의 칼'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인물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안내자는, 그가 열두 제자 중 디모데인데 다빈치 자신의 얼굴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교회의 식당이고 벽화의 무대도 식당이다. 예수의 등 뒤로 세 개의 창문이 보인다. 창문 너머로 그려진 경치는 다빈치가 자랐던 토스카니 지방이라고 한다. 이 경치로 해서 이 식당이 그림속으로 더 연장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이 美術史的으로 중요한 것은 다빈치가 새로운 畵法을 썼기 때문이다. 종전의 벽화 그리기는 벽에다가 회칠을 한 다음 축축한 상태에서 제한된 시간안에 그림을 그리는 플레스코 방식이었다. 다빈치는 마른 벽에다가 그렸다. 그러기 위해서 물감을 새로 개발했다.
즉, 안료를 계란의 흰자위와 섞어서 만든 물감을 썼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시간을 길게 갖고자 했다. 이 기간 그는 밀라노의 거리를 쏘다니면서 그림의 모델들을 구했다고 한다. 특히 가롯 유다의 모델을 구하러 감옥에 자주 갔다고 한다. 교회 책임자가 그리기를 빨리 끝내달라고 요구하자 다빈치는 '그렇다면 귀하를 유다의 모델로 그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名作을 그리기 위한 시간벌기, 그것을 위한 새로운 技法 개발, 덕분에 이 그림은 완성된 지 20년이 지나서부터 그림물감이 말랐다가 벽에서 떨어지는 등 손상이 가기 시작했다. 그 뒤 여러 차례 이 그림은 복원공사를 당해야 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최후의 만찬' 중 다빈치가 그린 원래 상태는 10%도 안된다는 說도 있다. 물론 안내자는 이런 의문제기에 펄쩍 뛰었다.
그리는 데 3년이 걸렸지만 다빈치는 이 그림을 준비하는 동안 손 발 등 人體에 대해서 많은 데상을 남겼다. 그 데상물들은 지금 영국 윈저城 왕실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준비과정을 살펴볼 때 다빈치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해부학, 기계학, 탄도학, 광선과 소리의 반사에까지 연구를 깊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은 15세기 말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이 총집결된 곳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다빈치는 예수의 그림만은 미완성 상태로 남겨두었다. 예수의 이미지가 애매하다. 그는 예수를 그릴 만한 자격이 자신에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빈치가 이 그림을 통해서 후세에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수의 폭탄선언을 맞은 제자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반응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극적인 장면을 그린 것뿐인가.
[ 2014-08-18, 22:57 ] 조회수 : 87 |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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