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타살 의혹 임시 정리중12

김대중|2011.10.0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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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타살 증거 - 인터넷에서 나도는 글 총 정리
이명박이 아니라 김대중이 죽였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당시의 이명박 입장에서는 노무현은 죽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김대중 입장에서는 노무현은 죽어줘야만 했다
(당시 상황 : 노무현으로 비자금 수사망이 좁혀들어간 상황)

< 기타 의혹 >
왜 서둘러 화장했는가?유언에 화장해달라고 써있어서 했다네...
2002년 장기기증하기로 약속했던 사람이 화장해달라고 유서를 써?
증거 인멸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화장이라는거 다 알지?
유서는 어디서 발견했는데?
컴퓨터에서 파일형태로 발견
전직 변호사가 자필이 아닌 유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텐데... 컴퓨터에 유서를 써?
참고) 한글 파일은 저장을 하면 첫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이 됩니다 그런데 유서의 내용을 밝힌 연합기사에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있더군요.. 이해가 가시나요?
(수정했다는 증거)

유서는 누가 발견했는데?
경호원이
그 경호원은 어디서 온 놈이야?누가 붙여주었는데?
김대중이 붙여주었다함

2
조선일보는 하루 전날 미리 기사를 작성?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사용된 추모 배너는 서거 전날인 2009년 5월 22일에 이미 제작 되어있었다.
(기사또한 미리 제작)
증거자료
아래 빨간 박스를 보세요
< 경호원 관련 의문점 >
목격자 하나씩 나올때마다 말 바꾸기를 수차례 번복한다.노통 투신하는 뒷모습 목격했다→정토원에 심부름 갔다오니 없엇고 그사이 투신한것 같다
정토원에..가지 않았다→정토원에 혼자 2번 갔다(노통 심부름 1회,노통찾으러 1회)
경찰조사를 마친후, 이경호관은 정토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물으면 정토원에 들른적
없다고 진술해 달라고 부탁햇다
또다른 목격자 정토원보살..<경호원 혼자 왔을리 없는데 하고 밖을 내다 보니 노통이 아래쪽으로 급히 내려가고 있었다.>
경호원이 정토원2회 방문(노통 심부름1회,노통찾으러 1회) 했다고 했으니 둘중하나다
노통 심부름 갔을때 목격된걸까? 그건아니다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고 있을 시간이다.
목격자(정토원장)의 진술과 일치하는 이경호관의 새로운 알리바이가 다시 발표된것이다.그럼 경호원이 노통을 찾아 해매던 시간에 목격 됬다는 건데 이것도 말도 안되는게 투신후에 홀로 죽어 가고 잇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호원과 정토원보살 둘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있다 누구일까?
경호관이 거짓말을 한 이유가 충격,흥분,죄책감,문책이 두려워서 라고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분이 죽었는데
문책이 두려웠다..?
뭐..경호원이 직업의식도 없는 나쁜놈이었다고 치자 , 그렇다면 그런놈이 엄청난 돈을 받고 노통을 살해햇을 가능성도 충분한거 아닌가?충격,흥분,죄책감 상태에서도 목격자를 매수할 정신은 있엇나 보지?
죄책감이 들었다면 경호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가 죄인이니 나를 벌해주시오
라고 말하는게 정상아닌가?
경호원수가 이상하다...
경호원은 최소 3명이상 5명~7명 홀수로 경호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호원들은 새벽 5시가 되면 경호팀들은
조가 편성된 대로 움직인다 특히 밖으로 나와 등산 길에 오를 때는
인원을 증가 시킨다
근데 왜 1명인가?..........

노무현 부인인 권양숙 여사보다 이명박대통령에게 왜 먼저 통보를 했나?

어떻게 이명박이 먼저 알고 권양숙 여사가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늦게 병원에 도착할 수가 있는지..
이게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코앞에 있던 사저에도 연락안하고 동료 경호원에게 연락한것도 의문이고...
평소 휴대하던 무전기(바로 누르면 바로 연락)로 긴급 연락도 안하고.. 핸드폰(시간 오래 걸림)으로 연락을?
왜 경호원은 추락사 한 사람을 (당연히 뼈가 산산조각 났을텐데)
119 부르지 않고 지가 직접 들어서 지 차에 태워서 동네 병원으로 갔나요?
것도 혼.자.서. 환자를 이송해??
누가 온몸 골절난 사람을 들쳐업고 동네 병원가냐고요.
어떻게 온몸이 골절되고 두개골이 파손이 되었는데
피를 흘린 흔적이 하나도 없을까요?
왜 그부분에 대해선 언론이나 수사쪽에서 함구하고 있을까요?

수습과정이 너무 빠르게 수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망시간으로부터 병원 이송시간까지가 20분 이내인 것은 말이 안된다.
그것도 경호원 혼자서 환자를 엎었다는 점.
산에서 내려오는데도 그리 빨리 왔다는건 거짓말이다.
병원이 흔한 도심에서도 구급차로 이송하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경호원이 바위에서 내려가서 들처매고 혼자 병원 후송했다..
상식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그 높이에서 뛰면 몸 다 부서져서
경호원 혼자 못 들쳐 매고 가네
소설 쓰나..
경호원이라는 정규 교육을 받으신 분이 누군가가 낙상하여 골절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였다니요?
누가 다쳐서 쓰러지면 척추신경 손상을 우려하여 절대로 환자를 옮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청와대 경호원이 어기고 119를 부르지도 않은채 옮기다니요.
경찰은 현장에서 잠바와 신발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추락하는 당시 벗겨졌다고 쳐보자
잠바는 왜 벗겨졌는가?
그리고 왜 잠바에선 혈흔이 발견되는가?
등산화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끈으로 조인 등산화는 벗겨질 수 가 없습니다.
상의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도 좀 이상하구요.

< 경찰 의혹 >
최초 경찰조사에서 발표된 유서저장시간 오전 5시 44분
CCTV속 노통과 경호원이 사저를 나선 시간은
5시 38분
유령이 유서작성?
이 사실이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타살의혹과 CCTV 공개요구가 빗발치자, 경찰은 CCTV를 공개
그러나
날짜와 시간이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노통이 사저를 나선시간을 47분 으로 수정해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노무현이 풀 뽑는 장면의 CCTV(사진4)의 날짜는 노통 사망 당일이 아닌 이전의 것인데
사망당일 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건 종료와 함께 공개된 cctv속 마지막으로 사저를 나서는 노통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회색 양복 상의>그러나 경찰은 <점퍼>를 노통 투신증거물이라며 공개
사건 당일 현장조사를 하면서 증거물인 노통의 상의는 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은건가?
현장에 있는 증거물을 마음데로 옮겨서 사진을 찍는것이 우리나라 경찰의 현장감식 방법인가?
유일하게 투신을 목격햇다던 경호원의 진술이 거짓임이 들어났으니누구도 투신 하는걸 본적없고 목격자,경호원 진술도 엇갈리고
수많은 증거 또한 자살이 아님
을 가르키고 있는데법적 효력도 없는 컴퓨터 유서 하나 내세워 수사3시간 만에 자살로 결론 내야할
사정이라도 있나?
이름없는 촌부의 죽음도 아니고, 전직대통령의 죽음인데....
어떻게 그 수습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답니까?
경찰발표로 드러난 사건경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23일 05:20 - 컴퓨터에 유서작성.
2. 23일 05:45 - 경호원1명 대동하여 사저를 나섬.
3. 23일 06:40 -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4. 23일 07:00 - 세영병원 도착 (경호원이 일반승용차로)
5. 23일 07:20 - 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6. 23일 07:35 - 부산대병원으로 후송(엠블런스로)
7. 23일 08:13 - 부산대병원 도착. 심폐소생술 시행.
8. 23일 09:30 - 소생술 중단. 노무현전대통령 서거.

특이사항 - 사고현장(부엉이바위아래)에서 투신충격으로 인한
혈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입니다.
경호원의 입을 빼면, 확실한 사실은 1,4,5,6,7,8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2번과 3번은 오로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일뿐입니다.

1번도 사실로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서라고 알려진 파일이 저장된 시각으로 추정한 추측일뿐이며,
그 파일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된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실로 확인된것은 4,5,6,7,8 뿐입니다.

세영병원도착 -> 청와대보고 -> 부산대병원후송 -> 서거.

이것이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을 배재한 확인된 사실의 전부입니다.
손쉽게 자살로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빈약하지 않습니까?
사고현장이 부엉이바위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사고현장이 아예 봉하마을이 아니라고 해도
경호원 1명의 진술에 의존하는한 문제될것이 전혀없는것입니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신발과 잠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바위에 부딛혀서 벗겨질수 있겠다...
그런데 잠바가 벗겨진것은 어찌된 일일까
만약 나무에 걸렸다면 잠바가 벗겨 질수있는데
그럼 피묻은 잠바는 성립이 안되는데
일단은 잠바를 입고 바위에서 뛰어 내려 옷에 피가 묻엇는데
경찰이 업을려니 (?)

무거워서 잠바를 벗기고 갔다가 나중에
그옷을 경찰이 발견하고 가져왔다 이말씀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죽었는데
거기서 죽었음을 확인시키려고 거기서 잠바를 발견했다고 하엿을까
바위에서 뛰어내렸는데 경찰이 옷을 잡아서 옷만 산위에서 남아있었는데

그옷을 경찰이 가져오다가 마침 대통령이 죽었다는그 자리에서 넘어져서
잠바에 피가 묻었을까
경찰의 발표가 실수인지 방송국에서 가짜경찰의 발표를 모르고 한것인지
경찰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 산속에서
< cctv를 조작했다는 증거 자료 >
거1)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톨게이트 CCTV 원본 화면을 캡쳐하여 확대해 봤습니다.
1. 원본사진에 보면 톨게이트를 지나갈 때, 아무리 봐도 저것은 손으로 보입니다.
노통 대통령님께서 얼마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셨을까요.
시간과 방향이 상당히 궁금하다
핵심 열쇠가 될 것 같다.
2. 운전사 뒷좌석에 노무현 대통령님이 쓰러져 계십니다.
얼마나 두렵고 아프셨을까요

이 CCTV가 공개되었다가 곧바로 노통님의 피흘리는 손대신 경찰 봉으로 편집된 조작CCTV로 교체 되었습니다.
아래의 확대된 화면을 보면, 픽셀 크기가 다른 것이 보이죠?
경찰봉을 붙였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보니..위의 피묻은 손과 경광등의 각도가 영 다르네)
3. 노무현 대통령님이 타신 승용차의 운전사와 外 한 사람입니다.
운전사는 흰색 옷을 입고 있고, 옆사람은 검은색 양복과 안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확대해 봤는데, 운전사의 실루엣으로 체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양산부산대병원 CCTV가 공개되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지도..........
증거2)
경찰발표한 CCTV중 사진4는 서거일인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연합뉴스 발표)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5월 23일)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
한 사진입니다.(일반인이 발표)
사진2(사진1과 동일로 예상, 빨간 색으로 표시한 사진)-연합뉴스 발표사진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노란색)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
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5월 이전에는 바람구멍이 없습니다.

사진4(문제의 사진... 경찰이 밝힌 찍힌 날짜가 수상하다)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
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사진4에 빨간 원을 그 은 것으로 생각됨, 경찰이 발표한 CCTV로 예상됨)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
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2009년 4월 19일 사진
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이제 구멍이 뚤리기 시작한 날짜료 예상)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4월 22일 부터 구멍을 뚫어놓은 것으로 예상
사진9 (추가)2009년 5월 10일 사진.
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사진 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경찰이 발표한 사진1(사진4 ?)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결론 : 경찰이 공개한 CCTV중 사진4는 서거일 날에 찍은 게 아니라
그 전에 찍힌 것을 경찰이 서거일날 찍혔다고 주장 하는 것 이다.
<병원/의학 관련 의혹 >
추락한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힌 세영병원 그리고 진술번복
★1차진술- 진료과정중 급격히 혈압이 떨어져 심폐소생 시행
★2차진술 - 처음 실려왔을때 이미 호흡이 없는 의식불명 상태 바로 심폐소생 시행
2차진술이 사실이라면 생사가 갈릴 긴박한 시간에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며 엽기적인 고문을 하고있엇던 것이고

1차 진술이 사실이라면
노통은 부영이 바위에서 투신했다고 볼수없다.왜냐하면 40m높이에서 떨어지면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는 다발성 골절,여러 장기의 파열,동맥과 정맥 출형 등
급격한 쇼크로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40m암벽에 투신했다는 분
왜 각목으로맞을때 흔히 생긴다는 머리 꼭대기 부분의 11cm상처
가 있을까?
만약 일부러 머리를 아래쪽으로 하여 투신하였다고 해도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났으며 즉사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쇠파이프등을 휘두를때 노리는 곳..

노통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한것이 사실이라면,
40m 절벽아래 착지지점은 피칠갑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엉이 바위 아래서 발견된 혈흔은 <코피한방울>이 전부
사망장소에는 전혀 혈흔이 없었다.
뇌 안쪽에서 피가 나올경우 외부로 피가 나오질 않을 가능성이 있으나
상의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었다.
사망요인이 두부외상이라는걸 감안하면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건 이상하다
잠바에는 왜 피가 묻었을까요
돌아가실 때 입고있던 그 잠바가 벗겨진 이유가 무었일까요
경찰은 그 잠바를 어디서 가져온것일까요
양팔의 골절-노무현 전 대통령은 양팔에 골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 팔이 골절되었다는것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넘어졌다는 것이다.
자살한 사람이 다시 살아보려고 두 팔로 무언가에 저항하려 했다는 것은 법의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기사마다 서거하신 시각이 다르다.
공통점이란 이명박 대통령이 사망소식을 접한 7시 20분 보다 몇시간 이후에 사망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즉,부엉이 바위는 노통의 사망장소라 할수없다.
부엉이 바위아래에서 노통을 발견했다는 경호원의 진술은 거짓이다
사건의 전말(대단한 예상 전문가 글)
●처음 계획은 노통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버리는 것이었지.
하지만
부엉이 바위는 산책로가 아니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노통은 잘 가지않았지 굉장히 위험한 곳이니까..
하지만 넌 노통을 부엉이 바위로 어떻게든 유인하려 했겠지.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살아요? 라고 물으며 전망이 보고싶다고 말했니?니가 최초 경찰조사에서 노통이 투신하기 전에 했던 그말은 노통이 한게 아니라경호원 니가 한거야..
노통은 봉하마을에 찾아오는 국민들에게 부엉이 바위에 대해 설명해
주시곤 했지
파견된지 하루밖에 안된 너에게 부엉이바위에 대해 물었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니가
부엉이 바위로 유인하려고 수작을 부린순간

노통은 위험을 직감하셧을꺼야
그래서 널 따돌리고 약 200m앞에 있는 정토원으로 달아나신 거지
너에게 심부름을 시켰겟지..
노통의 심부름을 거부 할수 없던 너는
자연스럽게 행동해 노통이 시킨 무언가를 하러가다 아차 싶어 뒤돌아보니
노통이 정토원 방향으로 급히 도망치고 있었니?

운동으로 단련된 니가 가까이 따라붙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노통은
정토원어딘가에 급히 몸을 숨겼고.. 뒤따라 정토원에 들어선 너는
곧바로 정토원장과 마주쳤지.
정토원장은 니눈에서 무엇이 느껴졋길래 첫인사가 <무슨일 있으십니까?> 였을까?
너는 <네,대통령이 오셨습니다> 가 아닌 <아무것도 아닙니다>로 얼버무렸지
뭔가.. 나쁜 짓을할때 <너 뭐하니?> 라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지

넌 무언가를 정토원에게 들킨거야! 그래서 니가 나중에...정토원에 간 사실을 경찰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정토원장에게 부탁해야만 했던 것이지
니가 대화하는 사이노통은 죽기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 부엉이 바위 산 아래쪽으로 도망친거지이때 노통은 정토원보살님께 목격되신걸테고..
노통을 찾아내지 못한너는
노통의 사저에 있던 유서를 맡았던
또다른 경호원에서 연락을해
모든 경호원이 들을수 있는 무전이 아닌 휴대전화로......
처음부터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곧바로 한놈한테만 전화할 이유가 없잖아?
경호할분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조치였다고? 그럼 애당초 2인1조 경호원칙은 왜
어겼으며 정토원 심부름 갈땐 왜 노통을 혼자 두고 사라진거니?
<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통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 들어간거야!
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또 한번은 놓쳤다는 전화를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컴퓨터를 끄지도 못한채 나와 버렸지!
통화 내용에는 <놓쳤다..보이지 않는다>노통이 무슨 범죄자니? 너는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
노통살해를 모의한놈은 세놈이었어산 아래로 도망치던 노통이 <산아래 어딘가에 다른놈>과 마주쳤던 거야봉화산 정상에 잇는 정토원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리지
니 몸이 두개가 아닌이상 그시간에 니가 있다는건 말이 안되거든..
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놈은 부엉이 바위 근처에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
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
쓰러진 노통의 등산화를 양쪽다 벗겻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
노통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겼니?투신할때 상의가 벗겨졌다구?
번지점프를 할때 일부러 양팔을 한껏 벌려도 상의는 벗겨지는 법이 없지
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언론장악 밖에 길이 없었겟지!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너무 많아 단속할 수 있는 시간도 여건도 불가능 했던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