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퓨리>를 보고 떠올린 <태극기 휘날리며>
우리나라 감독들은 조국을 지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면 ‘수구 꼴통’ 소리를 듣고, 그 반대로 표현하면 ‘진보 지식인’으로 포장되는 그들만의 문화 속에 살거나, 아니면 영화에서 반전(反戰)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 질 때가 많다.
영화 '퓨리'의 한 장면. |
영화 ‘퓨리’(fury)를 보았다. 필자는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2차 대전 영화는 이미 고전(古典)의 반열에 오른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기준으로 전쟁영화의 호불호(好不好)를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당시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전쟁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어서 극장을 나오면서 다시 표를 끊어 재관람을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용도 감동적이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디오와 DVD 등으로 스무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된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도 <라이언 일병>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2차 대전의 훌륭한 공부 교재가 될 정도로 고증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이 외에 <진주만>, <에너미 앳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윈드토커>(Windtalkers),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피아니스트>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 가운데 <에너미 앳더 게이트>와 <피아니스트>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역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처음 봤을 때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다.
영화 <퓨리>는 탱크 부대원 5명의 활약상을 다룬 이야기다. 배경은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을 무렵인 1945년 4월의 서부전선이다. 탱크 부대원 5명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냄새 나는 전쟁영화’로 정의할 수 있겠다.
영화는 참혹한 전장에 투입된 병사 개개인이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군복에 인격이 가려진 채 적군을 무자비하게 죽이지만, 그들도 어제까지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는 똑같은 인격체인 적을 죽여야 하는 병사들의 심리도 잘 그리고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자유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부각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전쟁영화’로 마무리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
탱크전(戰)의 긴장감과 묘미를 제대로 살렸으면…
기대가 커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우선 2차 대전 영화 중에 보기 드물게 탱크전(戰)을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탱크전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왕 탱크를 전면에 내세웠으면 관객들에게 생소한 탱크전의 다양한 전술을 보여주고, 전장(戰場)에서 탱크나 탱크부대가 전세(戰勢)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좀 더 확실하게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좁은 탱크 안에서 적의 사정거리에 노출된 채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심리 묘사와 긴장감도 떨어지고, 막판에 현실적이지 못한 전투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 <명량>의 전쟁 장면을 보듯이 별로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 얼개도 단순하고 흡입력이 떨어진다. 신참 병사가 참혹한 전쟁 속에서 인간적인 갈등을 겪는 구조는 전반적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면이 있고, 각 인물에 대한 결론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전차부대를 이끄는 워대디(브래드 피트)가 부하를 사랑하고, 적 앞에 용감한 영웅적인 모습이 좋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소대장 밀러 대위가 보여준 내면의 갈등이나, 강인함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면모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영화 <퓨리>는 장면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우선 사실 고증에 충실하다. 비록 영화 스토리 자체는 사실이 아니지만, 점령지(혹은 해방지)에서 등장하는 각종 에피소드들은 실제 있었던 사실을 영화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 전쟁영화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후 소름이 돋도록 충실한 고증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일할 수 있었다.
또한 <퓨리>를 보고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미국은 전쟁영화에서만큼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와 조국을 지킨 참전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조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사실 이 점이 우리나라 전쟁영화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전쟁영화의 시초를 연 <남부군>부터 노골적인 좌파적 색채를 드러내더니, <실미도>와 함께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군을 거의 학살자 수준으로 그려 놓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
엉터리 고증에 좌파적 시각의 우리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이진태의 아내는 배급을 타 먹으려고 여성동맹에 가입한 것 때문에 죽는 것으로 등장한다. 여성동맹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가 아니라, 단지 그 여성이 배급을 타오는 장면과 국군의 학살장면을 연결시킨 것이다.
소년병 출신인 세무사 류형석씨는 수년 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보고 “6ㆍ25를 이렇게 호도해도 되는가”하며 분노했다. 영화의 이 장면을 보면 누구나 대한민국을 저주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동맹은 민주청년동맹, 농민동맹과 함께 3대 악질조직입니다. 물자동원, 인력동원, 의용군 모집, 반동분자 색출에 앞장선 점령정책의 전위조직으로 저들의 혓바닥에 결리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국군은 여성동맹에 가입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체포한 여성동맹원 수십 명을 구덩이에 몰아넣어 총으로 사살하는데 영신이도 그 속에 끼여 죽습니다.”
류형석 세무사는 “이는 우리에게는 없는 북한식 학살방법”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부역행위자를 재판에 넘겨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 총살했습니다. 인민군보다 더 악질적인 부역행위자가 많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수십 명을 총살한 예가 있었고, 이럴 경우 무연고자는 구덩이를 파고 묻었습니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대량학살로 비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 수복 후 우익청년단이 민간인을 집단 처형해서 구덩이에 처 넣은 일은 없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인해전술 장면. |
<태극기 휘날리며>는 고증도 엉터리다. 형이 훈장을 받아 동생을 제대시킨다는 설정도 있을 수 없는 설정이며, 강제 징집장면도 고증이 엉터리다.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중공군의 인해(人海) 전술 장면은 그야말로 코디미 수준이다. ‘인해전술’이라는 의미를 글자그대로 해석해서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대의 실명(1사단)이 나오고, 그들이 벌인 전투 장소가 나오는데도 그 부대가 했던 일은 엉터리로 그려놓았다. 당시 1사단은 중공군의 공세에도 큰 위기 없이 부대 단위로 38선을 넘어 후퇴했기 때문에 영화에서와 같은 후퇴 장면은 없었다.
거기다가 이 영화는 “이 전쟁 누가 이기면 어때” “사상이 형제끼리 총질할 만큼 중요해”라는 병사들의 대사를 통해 김일성 공산집단으로부터 자유를 지킨 전쟁을 졸지에 누가 이겨도 상관없는 무의미한 내전(內戰)처럼 그려 놓았다.
여기서 예를 든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이지만, <웰컴투 동막골>이나, <고지전> 등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감독들은 조국을 지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면 ‘수구 꼴통’ 소리를 듣고, 그 반대로 표현하면 ‘진보 지식인’으로 포장되는 그들만의 문화 속에 살거나, 아니면 영화에서 반전(反戰)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 질 때가 많다.
[ 2014-11-28, 11:18 ] 조회수 : 893 |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