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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북한 핵개발 주범은 박지원

작성자 : 핵주범    작성일 : 16-09-14 조회수 : 833 추천수 : 21 번호 :56,178
여론 1번지 북한 핵개발 주범은 박지원 부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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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논설위원
경주 지진에 온 국민이 놀랐다. 그런데 핵은 수십 배 더 끔찍할 것이다. 사실 한국은 역사상 핵폭탄 같은 피해를 세 번 당했다. 불가항력이 아니었다. 정신 차렸으면 막을 수 있었다.

  첫 번째가 1592년 임진왜란이다. 나라 전체가 이순신처럼 방비(防備)했으면 왜군을 물리쳤을 것이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은 차마 눈뜨고 읽을 수가 없다. 임금이 피신 간 산하(山河)에서 백성들이 죽어 나갔다. 칼에 찔리거나 굶어 죽었다. 일본군이 떠난 한양성에서 “백성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유성룡은 적었다. 두 번째 핵폭탄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선조들은 왜 일본처럼 유신(維新)을 못했나. 3차는 1950년 한국전쟁이다. 똑같이 분단됐는데 남한만 군사력 무장에 허술했다.

  1차는 농업시대였고 2차·3차는 근대화·산업화 시대였다. 그때는 피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화 혁명의 시대다. 한번 크게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어렵다. 서울에 핵폭탄이 터지면 한국인은 오랜 세월 ‘암흑시대’를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핵전쟁에서 이겨도 그렇다.

  핵 위협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갈린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각오하고 위험의 싹을 잘랐다. 1981년 이스라엘은 이라크 원자로를 때려 부쉈다. 공군 조종사들이 왕복 2500㎞를 날아 눈으로 보고 때렸다. 2007년엔 시리아 원자로를 부쉈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이란 원자로도 폭격했을 것이다. 위험을 없애니까 이스라엘은 지금 안전하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용기 없고 무능하며 순진했다. 대화 환각증과 위장평화에 빠졌다. 급기야 공산주의 북한에 속아 많은 돈을 줬다. 결과적으로 핵 개발을 도운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며 충격적인 사건이 김대중 정권의 ‘4억5000만 달러’ 뒷돈이다. 정권 퇴임 이듬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건을 엄히 단죄했다. 판결문에는 국민 몰래 권력 심장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생히 담겨 있다. 북한과 뒷돈을 어떻게 흥정하고, 현대라는 사기업을 어떻게 이용했으며, 국가의 금융·외환·정보 시스템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이 사건은 충격적인 요소 4개를 갖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핵을 개발하는 적대세력에 국가가 세금으로 천문학적 현금을 줬다는 거다. 정상회담 두 달여 전 베이징 접촉에서 북한은 남한 박지원 특사에게 회담 대가로 10억 달러를 요구했다. 이후 양측은 흥정 끝에 4억5000만 달러에 합의했다. 이는 한화로 약 5000억원인데 지금 가치론 1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 북한은 최근 5차 핵실험을 했다. 비용은 500만 달러 정도일 것으로 국정원은 국회에 보고했다. 실제로 더 들어도 4억5000만 달러면 북한이 이런 핵실험을 수십 번 할 수 있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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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충격은 모든 과정이 완전 무법지대였다는 것이다. 박지원 특사, 임동원 국정원장,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은 정부 몫 1억 달러까지 현대에 안겼다. 현대가 돈이 없다고 하자 이 수석이 총대를 멨다. 그는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에게 부실대출을 압박했다. 당시 현대상선은 그룹 ‘왕자의 난’에 휩싸여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부채만 5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렇게 위험한 회사에 산업은행은 4000억원을 그냥 빌려 줬다. 대출한도·담보·재무상황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현대상선은 이 수상한 돈으로 배를 산 것처럼 꾸몄다. 모든 게 원조(元祖) 대우조선해양 사태다.

  셋째, 사건엔 청와대·국정원·산업은행·외환은행·현대그룹 실무자 수십 명이 관여했다. 대부분 거액의 달러가 남북 정상회담 뒷돈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안 돼”라고 외치지 않았다. 핵을 개발하는 정권에 수억 달러를 주는 게 어떤 일인지 역사적 문제인식을 가진 이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충격은 현재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과 액수를 흥정하고 돈을 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가 박지원 특사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재판을 떠나 결과적으로 그는 북한의 핵 개발에 재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그는 지금 제2야당 대표가 돼 있다. 박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 핵을 어떡하든지 막아 보려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situation)인가.

  역사적 교훈으로 보면 판결문은 2016년의 『징비록』이다. 위험을 막지 못한 선조들을 후손들은 얼마나 원망했나. 막기는커녕 되레 위험을 키운 선조라면 후손이 얼마나 더 크게 원망하겠는가. 징비록의 종잇장이 손바닥을 베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5차 북한 핵실험 막을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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