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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7일 토요일

제주도 경찰에 군항건설 저지자들 제압을 맡기다니!

제주도 경찰에 군항건설 저지자들 제압을 맡기다니!


글쓴이 : 지만원 조회 : 1,532 추천 : 173





제주도 경찰에 군항건설 저지자들 제압을 맡기다니!









1948년 제주도 경찰과 9연대는 빨갱이들이 많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제주도 경찰과 군인들 대부분은 빨갱이들과 사돈의 팔촌이라도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장대 빨갱이들을 잡는데 미온적이었고, 정보가 늘 새 나가 작전은 다 허탕으로 끝났습니다. 빨갱이들은 어느 집이 자기편이고 어느 집이 반동의 집인지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반동의 집을 늘 공격하여 살인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지난 4개월 동안 제주도에는 제주도 원주민들과 육지로부터 건너간 빨갱이 진을 쳤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에 동조하는 집에는 노란 깃대를 세우고 그렇지 않은 집에는 돌멩이를 던지는 등 각종 행패를 부려왔습니다. 장대 끝에 묶인 깃발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현수막들에는 ‘해군 NO’ ‘결사 항전’ ‘미 제국주의의 대 중국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빨갱이인 것입니다.









이들을 진압하는 임무를 제주도 경찰에 맡겼으니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들에 의한 공사 지연으로 하루에 59억원의 손실이 납니다. 이들은 해군간부들을 마구 구타하고 정강이를 찼습니다. 우리 해군은 매 맞는 해군이 되었습니다. 이런 행패들을 4개월씩이나 방치하는 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이들은 “4년 4개월을 끌어온 싸움을 끝낼 수 없다”며 결사항쟁을 외칩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은 960가구 1,900여 명이 살며, 이들은 1948년처럼 찬반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2007년 4월 노무현 정권 때 결정됐습니다. “미군 해군력의 지원 없이도 해양주권과 국익을 보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해군기지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 해안 48만㎡(육지 28만㎡, 해안 매립 20만㎡)에 9,770억원을 들여 2,014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항만은 부두 2,400m와 방파제 2,500m를 건설합니다. 전단급 소형 기지로, 이지스함 등 대형 함정 20여 척이 정박할 수 있는 규모이며,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을 동시에 계류시킬 수 있는 군·민 복합형 관광 미항의 개념으로 건설합니다.









해군기지 공사는 처음에는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2011년 6월 1,405억원(전체 사업비의 14%)이 투입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생명평화결사’ 등 육지 세력들이 개입하면서부터입니다. 이들이 반대파 주민들과 합류해 공사장 진입로와 해안 등에서 농성하면서 공사에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육지의 빨갱이들은 9월 3일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현지를 방문하는 ‘평화의 비행기’ 행사도 벌인다 합니다. 천주교 사제들과 제주도의원들도 농성에 합류했습니다. 김희중 대주교가 광주 지역 신도 40여 명과 함께 강정마을을 찾아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런데 8월 24일에는 참으로 창피하고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오후 2시경, 해군기지 건설부지에서는 경찰 公권력이 空권력이 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오후 2시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업체가 공사 재개를 위해 크레인을 조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마을주민과 반대단체 회원 수십 명이 몰려들어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크레인 위로 올라가는 등 장비 작동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연락을 받고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 등 경찰관 70여명이 현장으로 출동해 강정마을 주민 윤모·김모씨, 반대단체 회원 이모씨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오후 2시10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자 주민 100여 명이 해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이미 공사 현장 앞에서는 경찰과 주민들, 그리고 외지에서 온 시민운동가들이 엉켜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현장의 주민들은 20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도로는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로 세워둔 차량으로 가득 들어찼고, 건설 현장 출입구인 강정교에선 주민 10여 명이 몸에 쇠사슬을 둘러 감고 그것을 교각에 연결해 드러누웠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400여 명의 경찰을 출동시켰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위세에 밀려 포위당했습니다. 빨갱이들은 촛불 문화제까지 열어가며 경찰과 7시간30여 분 동안 대치했고, 경찰은 이들에 억류되었습니다. 오후 10시가 되자 경찰은 손을 들었습니다. 3가지 조건에 항복한 것입니다. 1)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을 경찰 차량이 아닌 고병수 신부의 차량으로 경찰서로 이동시키며 이때 강정마을 주민 10명 및 제주도의회 의원들도 동행한다 2) 이날 현장에서 경찰이 채증한 증거들은 모두 무효화한다 3) 강 회장 등 연행된 5명은 당일(24일) 안에 조사를 마치고 즉각 석방한다. 이 약속을 해주고 경찰은 7시간 넘는 억류 상황에서 벗어나 밤 10시쯤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민중의 지팡이입니까? 민중이 경찰의 지팡이인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제주지검은 연행자 5명의 업무방해 혐의보다 7시간 넘게 경찰 공권력을 무력화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가 더 중한 것으로 보고, 철저한 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범죄 혐의자의 석방을 시위대와 합의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이에 화가 난 조현오 경찰청장이 즉시 송양화 서귀포서장을 경질하고, 경찰청 감찰팀도 제주로 급파돼 당시 지휘·통제 상황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이어서 8월 26일, 검찰·경찰·국정원이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공안대책협의회가 열립니다. 공안대책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회의가 열리는 것은 지난 2008년 촛불시위 때 이후 처음입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방해 움직임도 있고 주말에는 시내에서 집회들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관계기관끼리 적절한 대응책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2011.8.2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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